글 싣는 순서
<1부> 국내 실태
<2부> 해외 사례: 해외에서의 훈육과 학대 경계선
① ‘체벌 프리존’ 변하는 프랑스
② 심리적 학대 해결 나선 일본
③ 몽골의 ‘긍정적 훈육’
④ 체벌금지법, 진통 겪는 캐나다
<3부> 대안을 찾아서
부모가 원하는 걸 아이에게 강요하는 게 아니라 아이가 원하는 것이 뭔지 듣고 대화
“혼내는 건 좋은 교육 아냐, 프로그램을 이수한 뒤로 내 스스로가 많이 변했다”
몽골 수도 울란바토르 외곽에는 곳곳에 게르촌이 있다. 게르는 몽골의 전통 천막집이다. 지난 16일 기자가 이곳을 찾아갔을 때 갈단잠츠 라바크수렝(44)씨는 유치원에서 아이들을 데려오고 있었다. 그는 체벌하는 아버지였다. 4남매 중 말 안 듣는 아이를 혼내다 때로는 손찌검을 했다.
갈단잠츠씨가 바뀐 건 ‘긍정적 훈육’ 프로그램을 들으면서부터다. 그는 ‘세이브더칠드런 몽골’이 실시하는 이 프로그램을 지난 3월 수료했다. 같이 수업을 들은 부모 13명 중 남자는 자신을 포함해 2명뿐이었다. 그럼에도 프로그램을 수강하기로 마음먹은 건 4명이나 되는 아이들을 잘 키우고 싶었기 때문이다. 2008년까지 경찰로 일하면서 아동학대 사건을 여러 번 접했던 것도 영향을 줬다.
몽골 정부는 올해를 긍정적 훈육을 실천하는 해로 지정하고 대대적인 부모교육을 권장하고 있다. 아이들의 생각을 이해하고 연령대별 발달상황을 고려하도록 부모를 가르치는 프로그램이 곳곳에서 진행 중이다. 국민일보는 이 프로그램을 수강한 뒤 아이와의 관계가 바뀌었다는 몽골의 세 부모를 만났다.
교육을 받기 전 맞벌이 부부 갈단잠츠씨 가정은 아침마다 전쟁터였다. 출근시간은 다가오는데 네 아이 중 한 명이라도 “옷을 안 입겠다”고 버티면 부부 모두 스트레스를 받았다. 그럴 때면 억지로 옷을 입혀 학교에 끌고 가야 했다. 지금은 30분 정도 일찍 일어나 아이에게 직접 옷을 고르게 한다. 갈단잠츠씨는 “이 방법이 잠을 더 자고 스트레스 받는 것보다 훨씬 낫다는 걸 이제 이해했다”며 웃었다.
갈단잠츠씨는 프로그램을 수료한 후 한 번도 아이들을 때린 적이 없다. 그는 “원하는 걸 아이에게 강요하는 게 아니라 아이가 원하는 게 뭔지 듣고 대화를 해야 한다는 걸 배웠다”며 “이전에도 알고는 있었지만 화가 나면 참지 못했고 다른 대처방법도 몰랐다”고 했다. 어릴 적 아버지 없이 큰 갈단잠츠씨는 아버지가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고 한다. 그는 “교육을 받고 나니 애들은 어른과 생각하는 게 많이 다르다는 걸 알게 됐고 (아이를) 이해하기 시작했다”고 덧붙였다.
아내도 남편의 변화를 기뻐했다. 아내는 “이전까진 세 아들이 주로 나하고만 대화를 했는데 요즘에는 아빠한테도 조금씩 말을 걸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세 아이 엄마인 먀그마르자브 나랑토야(37)씨도 이 프로그램을 통해 바뀌었다. 지난해 9월 처음 수업을 듣기 전까지는 유독 말수가 적은 둘째 딸과 다툼이 잦았다. “애가 아빠를 닮아서 이상해”라고 화를 내기도 했다. 먀그마르자브씨는 이제 아이를 혼내는 대신 칭찬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한다. 그는 “(긍정적 훈육의) 가장 큰 교훈은 어른들은 아이였던 적이 있지만 아이들은 어른이 돼본 적이 없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어른인 부모가 아이를 먼저 이해해야 한다는 뜻이다.
‘나 정도면 좋은 엄마’라고 여겼던 자부심은 세 번째 수업 때부터 사라졌다. 대부분 몽골 부모처럼 ‘첫째만 잘 키워놓으면 큰 애가 동생들을 이끌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도 바뀌었다. 먀그마르자브씨는 이제 부엌에 아이가 들어와도 화를 내지 않는다. “위험해서 안 돼, 저리 비켜”라고만 하던 과거와 달리 애가 할 수 있을 만한 일을 하도록 일러주고 위험한 일은 왜 위험한지 설명해준다. 둘째 딸 아논떼르(11)양은 “엄마가 교육받고 나서 엄마를 더 사랑하게 됐어요”라며 수줍게 웃었다.
곧 할머니가 될 예정인 간조르자브 알탄제젝(51)씨는 손주도 긍정적 훈육법으로 기르려고 마음먹고 있다. 막내딸인 바잉자르갈(12)양에게는 아침마다 뽀뽀를 해준다. 교육을 받기 전에는 없었던 일이다. 7남매 중 장녀였던 간조르자브씨는 어릴 때 부모님께 맞고 자랐다고 했다. 몽골에는 허리띠로 아이들을 체벌하는 풍습이 있었다. 간조르자브씨는 “저도 아이들이 말을 안 들으면 ‘너희를 위한 건데 왜 그러냐’며 화를 냈었다”면서 “교육을 받은 뒤 제 스스로가 많이 변했다”고 말했다.
한국에도 ‘사랑의 매’라는 말이 있다고 하자 간조르자브씨는 “혼내는 건 절대 좋은 교육이 될 수 없다”며 “아이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아이가 원하는 게 있다면 그걸 할 수 있도록 지원해줘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울란바토르 = 임주언 허경구 기자 eon@kmib.co.kr
[훈육과 학대의 갈림길] “아이는 어른이 돼본 적이 없잖아요?”
입력 2018-05-25 0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