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엄지손가락을 꼭 잡고 잠이 든 아기의 표정은 세상 누구보다 평화롭다. 엄마 이혜연(41)씨는 잠이 든 아들 시환(3)이를 보며 매일 속삭인다. “사랑하는 아들. 넌 하나님이 우리 가정에 보내주신 소중한 선물이란다. 우리 가정의 축복의 통로란다. 너를 통해 엄마는 매일 강해지고 있어. 부족한 엄마에게 와 줘서 정말 고마워.” 아이는 선천성 심장병(심장장애 1급)을 안고 태어났다. 태어나자마자 8시간의 힘든 수술을 받았고, 현재 3년째 서울대학교어린이병원에 장기입원 중이다.
그동안 7번의 수술을 받았다. 기관지 절개로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아이는 엄마와 눈빛으로 대화한다. 또랑또랑한 눈망울로 “엄마 사랑해” “엄마 오늘 너무 힘들었어”라고 말한다.
“임신 7개월 때 아이가 심장기형이란 사실을 알았지만 포기할 수 없었어요. 아이를 낳고, 기르고, 사랑하는 데는 사실 엄마의 의지는 없는 것 같아요. 본능적으로 하루하루를 살아요. 그래서 기도 외에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요.”
담당의사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다했습니다. 그동안 하나님께서 살리셨으니 앞으로도 하나님께 맡길 수밖에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아이를 살리는 유일한 방법은 심장과 폐를 동시에 이식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한 번도 시도된 적이 없다.
아기와 함께 태어난 ‘갓난 엄마’
‘갓난아기’가 있으면 ‘갓난 엄마’가 있다. 엄마도 갓 태어나는 것이다. 엄마는 아이를 양육하면서 더 성장하고 강해진다. 그는 시환이 이야기를 할 때면 아직도 눈물을 주체하지 못하지만 오늘보다 내일이 더 나아지고 강인해질 것이다.
“아이를 낳을 때 과다출혈로 저도 위험한 고비를 넘겨 기진맥진한 상태였는데 아기 면회시간이 되자 침대에서 저절로 일어나졌어요. 그 힘이 어디서 나왔는지 모르겠어요. 장시간의 수술을 견뎌낸 아들을 바라보며 ‘어떤 어려움이 와도 널 꼭 지켜줄게’라고 말했어요.”
그는 지난 3년간 크고 작은 고비를 수없이 넘겼다. 갑작스러운 친정엄마의 수술, 개원한 지 얼마 안 된 영어학원의 경영난…. 그사이 남편과 시어머니, 그가 3교대로 시환이를 돌봐야 했다. 첫째 딸 주아(7)가 부모와 함께 있는 시간은 일주일에 2시간도 안 됐다.
“‘주님, 왜 저에게 이런 고난을 주시나요. 주일성수도 잘하고 늘 말씀에 순종하는 저를 사랑해 줘야지 않나요’라고 따지듯 기도했어요. 이젠 알아요. 주님은 어떤 상황 속에서도 ‘내가 여기 있단다 얘야’라고 말씀하셨는데 저는 항상 ‘어디 가셨어요? 계신 거 맞아요? 나를 이렇게 버려둘 수 있어요?’라고 소리를 쳤던 거죠.”
심각한 우울증으로 힘겨울 때도 있었다. 하나님은 그럴 때마다 사람들 앞에서 간증하게 하셨다. 그는 2008년부터 한국컴패션 일반인 홍보대사 VOC(Voice Of Compassion)로 활동했고, 2010년 결혼 후에는 남편과 함께 VOC로 활동했다. 지난해 말, ‘한국컴패션 일반인 홍보대사 10주년 기념행사’ 때 활동 소감을 발표해 달라는 제안을 받았다. 그는 이를 통해 지난날을 돌아보며 감사했고 우울증은 사라졌다고 했다.
“당시 운전대를 잡으면 내가 어떤 행동을 할지 두려워 운전을 안 할 때였어요.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자살하는 사람을 이해하지 못했는데 그땐 그 심정이 이해가 됐어요. 이런 내가 수많은 후원자 앞에서 무슨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고민했어요. 그러나 사람들 앞에 서서 ‘나 지금 너무 힘들고, 고통스럽다. 그런데 그럼에도 감사하다’고 말했어요. 편한 분위기 속에서 진솔한 이야기를 하니 신기하게도 제 아픔이 싹 수그러들었어요.”
소감을 발표하기로 결정한 다음 날 심장재단에서 전화가 왔다. 시환이의 남은 병원비를 후원하겠다고 했다. 이 일을 통해 그는 순종한 자의 가난한 마음을 하나님께서 채워주신다는 것을 경험했다.
그는 원래 부끄러움이 매우 많은 사람이었다. VOC 정기모임에는 예배 시작 시간에 맞춰 오고, 끝나면 달음질하기 일쑤였다. “성경에 나오는 기드온처럼 숨어 있는 겁이 많은 사람이에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기드온처럼 저를 사용하시는 것 같아요. 순간순간 어디서 나오는 용기인지 하나님께서는 저를 부르신 자리에 서게 하시고 말하게 하셨어요. 항상 신기한 것은 저는 가만히 있는데 하나님께서 기회를 만들어 놓으시고, 계획에 순종하게 하시는 겁니다. 부르신 이유와 의미는 나중에 깨닫게 되죠.”
사랑해야 행복한 ‘다섯 아이 엄마’
하나님과 가까워질수록 삶의 이유가 분명해졌다. 그는 자신의 삶이 행복한 이유는 있는 그대로 믿고 따르기 때문이라고 자신 있게 말했다.
“간혹 사람들이 이렇게 말해요. 혜연씨 주변엔 왜 그렇게 아픈 사람이 많냐고요. 행복할 조건이 하나도 없다나요. 그런데 이거 아세요? 우리가 아프고, 어렵고, 힘든 만큼 하나님과 가까워질 일이 많다는 거요. 그것만으로 저는 충분히 행복하고 감사합니다. 아프고 힘든 만큼 하나님과 가까워지더라고요. 있는 그대로 믿고 순종하는 것이 제 삶이 행복한 이유입니다.”
그에게 주아, 시환이 외에 세 명의 자녀가 더 있다. 후원하는 아동들이다. 케냐의 엘리스(15), 에콰도르의 마르셀라도(15), 필리핀의 로단(7). “아이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성장할 수 있어서 너무나 행복합니다. 제가 시환이의 손을 놓지 않는 사랑의 원천은 바로 컴패션 후원아동들 때문입니다. 모든 것을 그만두고 싶을 때 복음 안에서 하루하루를 살고 있는 아이들을 생각하며 다시 일어났어요. 아이들의 편지에서 한 번도 빠지지 않은 글귀는 ‘후원자님을 위해 기도합니다’는 것이었어요. 그 중보에 힘입어 오늘까지 올 수 있었어요.”
막대한 병원비로 빚이 있어 후원금을 못 보낼 수도 있다는 생각은 안 했다. 2005년 첫 후원을 시작해서 지금까지 한 번도 쉬지 않았다.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없을 수 없지만 낙심될 때마다 후원아동들을 보면서 ‘내가 이러면 안 되지’하며, 아이들을 위해서 힘을 내고, 제가 받은 감사의 제목을 더욱 붙잡았어요.”
주님은 비우면 또 채워주셨다. 2015년 서울 관악구 봉천동에 개원한 영어학원(LEE School)은 경영이 어려워 언제 문을 닫을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그러던 중 지역아동센터의 한 교사가 찾아와 센터 어린이 16명의 무료교육을 요청했다. 잠시 고민했지만 걱정을 내려놓고 16명을 무료로 지도했다. 학원은 어려운 가운데서도 영어전문학원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이제 세 아이의 후원을 쉴 수 없고, 두 아이를 키워야 해요. 멀리 있는 세 아이를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기도와 후원이지요. 첫째 주아를 위해 할 수 있는 것도, 아픈 시환이를 위해 할 수 있는 것도 기도뿐입니다. 이제 다섯 명의 아이를 위해서 하나님께서 시키시는 일은 무엇이든 할 거예요. 어려운 지역 아동들을 지도하고 학원운영을 할 겁니다. 첫째가 예쁘게 잘 자라고 있고, 아픈 둘째가 오늘도 살아 있게 하시는 기적을 경험하며 주어지는 대로 살아갈 겁니다.”
그는 이제 아무런 계획을 세우지 않는다. 예전엔 꼼꼼하게 계획을 세웠는데 지금은 그냥 주어지는 대로 산다. 인간이 아무리 계획을 세워도 이루시는 이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학원 강의가 끝나는 시간이 밤 10시. 첫째가 있는 친정에 들러서 아이 얼굴을 잠시 보고 둘째 시환이가 있는 병원으로 가서 남편과 교대한다. 새벽 5시까지 아이 곁을 지키다 집으로 돌아와 잠시 눈을 붙이고 일어나면 아침 출근시간이다. 이렇게 하루가 바쁘게 돌아간다. 그가 날마다 강건할 수 있는 힘의 원천은 ‘다섯 아이의 엄마’란 사실이 아닐까. 그는 하나님이 선택한 ‘엄마’다.
▩ 엄마에 하나 더
교회 공동체의 기초, 모성
미국의 영성신학자 유진 피터슨은 “엄마는 하나님의 진실한 마음이 담긴 최상의 선물이자 당신 자녀들을 돌보시는 하나님의 모습 그대로를 보여준다”고 말했다. 그는 저서 ‘엄마의 힘’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분은 한 엄마를 선택해서 온 인류를 빚어내셨습니다. 또 다른 엄마를 지정해서 독생자요 구세주를 낳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바로 당신을 택해서 아이들에게 생명과 소망을 전달하게 하셨습니다.”
엄마는 언제 돌아와도 쉴 수 있는 가장 안전한 존재다. 아무리 힘든 일을 겪어도 세상에 맞설 수 있는 힘의 원천이 돼야 한다. 탈무드는 ‘모든 곳에 하나님이 함께할 수 없기에 인간에게 어머니를 주셨다’고 말한다.
교회 공동체의 기초는 바로 모성이 돼야 한다. 예수님도 이 공동체를 위해 낮아져서 섬기고 자신의 목숨까지 내어주는 모성적 지도력을 택하셨다. 예수님의 모성적 지도력은 초대 교회의 지도자들에게 그대로 전수됐다. 바울 사도는 갈라디아에 사는 교인들에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나의 자녀 여러분, 나는 여러분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어지기까지 다시 해산의 고통을 겪습니다.”(현대인의 성경, 갈 4:19)
바울의 목회 지도력은 모성적인 특징이 강했다. 초대 교회 지도자들도 모성적 지도력이 더 강했다고 할 수 있다. 초대 교회에서 여성들이 지도자로 활동한 예가 많았다. 신앙인들의 공동체 교회는 모성적 하나님의 모습으로, 아파하고 힘겨워하는 사회와 이웃을 안을 수 있고 그들 역시 편히 안길 수 있는 따뜻한 곳이어야 한다. 지친 영혼들이 쉼을 얻고 위로받는 엄마 품속 같은 교회 공동체로 거듭나야 한다.
이지현 선임기자 jeehl@kmib.co.kr
[이지현의 두글자 발견 : 엄마] 아가야 엄마는 너의 손 놓지 않을 거야
입력 2018-05-26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