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불감증, 이대로 괜찮은가?] “책임안지는 풍토가 화 키워”

입력 2018-05-27 20:01
정재희 서울과기대 명예교수
‘2018 미래 안전·건강 포럼’ 1부 ‘안전불감증, 이대로 괜찮은가?’에서 패널들이 토론을 벌이고 있다. 왼쪽부터 이윤호 안전생활실천시민연합 안전정책본부장, 지만석 행정안전부 예방안전과 과장, 이창우 숭실사이버대학교 소방방재학과 교수, 정재희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안전공학과 명예교수, 최영 소방방재신문 기자. 박태현 쿠키뉴스 기자
주제발표

정재희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안전공학과 명예교수가 “안전불감증에 의한 재난안전사고가 지속되는 원인은 ‘잘못을 해도 책임지지 않는 사회’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지난 24일 서울 영등포구 CCMM 빌딩에서 열린 2018 미래안전·건강 포럼에서 ‘안전불감증이 재난으로 이어진다’는 내용으로 주제발표에 나선 정 교수는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도록 헌법에 명시돼있지만 대다수의 국민들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이어 “1996년 발생했던 삼풍백화점 붕괴사고의 책임자는 실형 7년 6개월로 마무리됐다”면서 “세월호 참사나 옥시 가습기살균제 문제, 이천 냉동창고 화재 사건 등에서도 알 수 있듯 사회 전반에 안전사고를 책임지지 않는 문화가 만연해 국민의 안전불감증의식을 키우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 교수는 재난의 원인에 대해 크게 규제 실효성 저하와 안전의식 미흡, 산재예방산업의 문제 등을 꼽았다. 정 교수에 따르면 유럽 일부국가의 경우 교통범칙금을 소득에 비례해서 부과하는 ‘일수벌금제’를 적용하고 있다. 핀란드 노키아 부회장의 경우 25㎞/h 초과해 과속운전했다가 적발돼 1억4000만원의 벌금이 부과되기도 했다.

정 교수는 “불법주정차와 비상구 폐쇄, 물건적치 등 우리 생활 속에 뿌리깊이 자리 잡고 있는 안전 무시 관행을 해결하기 위해 행정안전부 주관의 안전보안관이 활동에 나서고 있지만 국민이 피부로 느끼고 스스로 동참하는 경우가 적다”고 우려했다.

산업예방사업비 사용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정 교수는 “산업안전사고의 경우 90%가 인재(人災)임에도 전체 예산인 약 3000억원의 84%를 안전보건설비개선 등 물적 요인 위험 감소에 집중하고 있다”면서 “안전불감증과 관련이 높은 ‘인적원인감소’와 관련된 50인 미만 영세사업자의 안전보건기술지도 등의 사업비는 10% 수준에 불과해 이에 대한 개선 보안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재난안전사고감소 방안에 대해서는 ‘책임지는 사회로의 전환’을 위해 ‘법인과실치사법 개정’과 ‘교통사고처리특례법 폐지’, ‘일수벌금제 도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영국에서 2007년 제정된 ‘기업 과실치사 및 기업살인법’은 기업이나 정부 기관 등을 포함하는 경우 업무와 관련된 모든 노동자와 공중안전조치를 하지 않아 사망사고가 발생할 경우 강한 책임을 부과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정 교수는 또 “교통사고처리특례법은 엄밀히 따지자면 가해자의 책임을 현저히 축소시키는 지구 유일의 가해자 보호법”이라면서 “교특법을 폐지하고 일본의 ‘교통사건즉결재판수속법’ 등 선진국의 운영방법을 도입 추진해야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유럽 일부 국가에서 시행중인 일수벌금제 제도를 국내에 도입함으로써 규제의 합리성을 확보해야한다”고 덧붙였다.

조현우 쿠키뉴스 기자

패널토론
“시민의식 탓 그만… 세심한 정책 마련을”


지만석 행정안전부 예방안전과 과장은 지난 24일 서울 여의도 CCMM빌딩에서 열린 안전 포럼에 패널로 참석해 “우리 주변에 만연한 안전불감 의식 및 안전 무시 관행들로 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며 “이를 근원적으로 예방하려면 생활 속 관행들을 국민과 정부가 함께 근절해 나가는 것이 꼭 필요하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러면서 “법·제도 개선과 안전 인프라 확충 부분은 특히 정부가 담당해야 할 부분”이라며 “실제로 비상구 폐쇄 문제로 화재가 발생해 사상자가 발생할 경우 지금은 300만원 이하의 과태료만 부과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패널로 참석한 이윤호 안전생활실천시민연합(안실련) 안전정책본부장도 정부 역할의 중요성을 언급했다. 그는 “현재 경찰청과 지자체 등의 기관이 각각 따로 놀고 있는 상황”이라며 “총괄 부서가 없으면 (정책이) 산으로 가는지 바다로 가는지 알 수가 없다. 총괄조직이 필요한 이유”라고 주장했다.

안실련이 지난 3월22일부터 지난달 4일까지 성인 726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새 정부 출범 1년간의 안전 분야 성과를 묻는 설문조사에 따르면 195명(26.8%)만이 ‘매우 잘하고 있다’ ‘잘하고 있다’ 등의 응답을 했다. ‘보통이다’를 택한 이들은 324명(44.6%)이었으며 ‘잘하지 못하고 있다’는 141명(19.4%), ‘매우 실망스럽다’는 66명(9.1%)이었다.

이 본부장은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 만 4년이 지났다”면서 “적어도 우리 사회의 안전 시스템이 개선됐어야 마땅한 시간이지만, 설문 결과 10명 중 7명은 나아진 게 없다고 답변했다”고 꼬집었다.

마지막 패널로 나선 최영 소방방재신문 기자는 정부의 ‘안전불감증’을 지적했다.

최 기자는 “정부는 안전불감증에서 깨어나 사전에 시스템적으로 예방하고 해소할 수 있는 부분들에 대해서는 적극적인 자세를 보여야 할 것”이라며 “정부에서 최근 추진하겠다고 한 화재안전 TF(테스크포스)도 큰 틀만 담고 있지 실질적으로 어떤 것을 할 것인지 형상을 그려내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화재사고 피해 확산은 대부분 시스템적인 요소에서 기인하는데, 이는 정책을 관장하고 있는 정부가 뒷짐을 지고 있기 때문”이라며 “안전사고는 국민의 안전의식 부족에서만 비롯되는 것은 아니다”고 일침을 가했다.

이승희, 남가언 쿠키뉴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