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핵 보유국 주장하며 “리비아와 비교하는 건 정치적으로 아둔한 얼뜨기”
美는 北·美회담 개최 의지… 주말부터 양측 사전 접촉 판 자체 흔들리진 않을 듯
6월 12일 싱가포르 정상회담을 앞두고 북한과 미국의 신경전이 계속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미 정상회담을 통해 비핵화 방법론에서 일부 양보하겠다는 뜻을 내비쳤지만, 북한은 미국이 태도를 바꾸지 않으면 북·미 정상회담 개최를 재검토할 수 있다고 엄포를 놨다. 자신들이 ‘핵보유국’이라는 점도 강조했다.
그러자 미국은 북한이 요구한 비핵화 반대급부 등 북·미 간 협상 내용을 일부 공개하며 정상회담 개최를 향한 의지를 드러냈다. 그러면서도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CVID)’를 관철할 수 없다면 북·미 정상회담 개최에 매달리지 않겠다는 뜻도 밝혔다. 북·미 정상회담 성사 여부는 이번 주말로 예정된 싱가포르 실무접촉과 다음 주 이후 예상되는 북·미 고위급 대화에서 최종 판가름 날 전망이다.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은 24일 조선중앙통신에 공개된 담화문에서 “미국이 우리의 선의를 모독하고 계속 불법무도하게 나오는 경우 나는 조·미(북·미) 수뇌회담을 재고려할 데 대한 문제를 최고지도부에 제기할 것”이라며 “미국이 우리를 회담장에서 만날지 아니면 핵 대 핵의 대결장에서 만날지는 전적으로 미국의 결심과 처신 여하에 달려 있다”고 주장했다. 최 부상은 “우리는 미국에 대화를 구걸하지 않으며 미국이 우리와 마주앉지 않겠다면 구태여 붙잡지도 않을 것”이라고도 했다.
최 부상은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이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한 발언을 문제 삼았다. 펜스 부통령은 당시 인터뷰에서 “김정은이 협상하지 않는다면 (북한은) ‘리비아 모델’로 끝날 것” “대북 군사적 옵션이 배제된 적은 없다” 등 강경 발언을 쏟아낸 바 있다. 최 부상은 “대미 사업을 보는 나로서는 미국 부통령의 입에서 이런 무지몽매한 소리가 나온 데 대해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며 “핵보유국인 우리 국가를 고작해서 얼마 되지 않는 설비들이나 차려놓고 만지작거리던 리비아와 비교하는 것만 봐도 그가 얼마나 정치적으로 아둔한 얼뜨기인가를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고 했다.
북한은 미국 고위 관리들이 리비아를 언급할 때마다 격렬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최 부상의 상관인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도 지난 16일 담화에서 리비아식 북핵 폐기를 강조하던 존 볼턴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사이비 우국지사’라고 비난한 바 있다. 특히 김 제1부상과 최 부상은 북한을 리비아와 차별화하기 위해 최근 북한 공식 문건에서 잘 나오지 않던 ‘핵보유국’ 표현을 다시 등장시켰다. 북한은 북·미 접촉이 본격화된 이후 미국을 자극할 수 있는 ‘핵보유국’ 대신 ‘국가 핵무력 완성’ 등 비교적 순화된 문구를 사용했었다.
다만 북한이 북·미 정상회담의 판 자체를 흔들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김 제1부상과 최 부상 모두 북·미 정상회담을 ‘재고려’할 수 있다고만 했을 뿐, 회담 자체를 파기하겠다는 뉘앙스는 담지 않았다. 조지프 헤이긴 백악관 부비서실장과 미라 리카르델 국가안보 부보좌관은 이번 주말 싱가포르에서 북한 측과 정상회담 준비를 위한 사전 접촉을 가질 예정이다.
북한에서는 김창선 국무위원회 부장 등 서기실 라인이 이들을 상대할 것으로 보인다. 사전 접촉 이후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과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 등 북·미 고위급 간 접촉이 제3국에서 이뤄질 가능성이 있다.
조성은 기자 jse130801@kmib.co.kr
美 “CVID 관철” 北 “회담 재고려”… 가열되는 기싸움
입력 2018-05-24 2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