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나사로] 편견과 바른 시선

입력 2018-05-26 00:00 수정 2018-05-26 00:58

초등학교 입학식날 수많은 사람 앞에서 한 소년이 쓰러졌다. 축구선수가 꿈이었던 소년의 눈높이는 하루아침에 허리 아래로 내려앉았다. 원인 모를 희소질환으로 인한 하반신 마비. 소년은 평생을 휠체어에 앉아 살아야 하는 신세가 됐다.

절망은 쉬이 사라지지 않았다. 일상의 순간순간이 소년의 자신감을 깎고 또 깎아내렸다. 비장애인이었을 땐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던 낮은 오르막을 넘기 위해 소년은 휠체어 핸드림(hand rim·바퀴를 밀 때 쓰는 손잡이)과 사투를 벌여야 했다.

몇 년 후 아버지가 근무지를 옮기면서 전학을 가게 된 소년은 “학교에 가도 왕따를 당할 게 뻔하다”며 등교를 거부했다. 등교를 두고 며칠간 승강이를 벌이던 소년은 결국 아버지가 밀어주는 휠체어에 실려 학교에 도착했다. 담임선생님과 처음 들어간 교실.

“여러분과 함께 생활할 친구예요. 우리 친구는 팔씨름 챔피언이래요. 한번 겨뤄볼 사람.”

교실은 한바탕 난리가 났다. 저마다 소년과 팔씨름을 하겠다고 줄을 섰다. 책상은 팔씨름 대회장으로 변했다. 수년간 핸드림을 밀고 당기며 팔 근육을 단련해 온 소년을 이겨낼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소년은 학교에서 일약 ‘스타’가 됐다. 소년의 아버지가 아들의 등교를 위해 선생님과 상담하는 동안 선생님이 “소년의 장점을 극대화할 수 있는 시간을 준비해보겠다”며 아이디어를 낸 것이다.

또 다른 소년이 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선교사인 아버지를 따라 미국의 한 작은 도시에서 생활하게 된 소년은 잔뜩 긴장한 채 크리스천 학교에 등교했다. 첫 수업은 영어시간. 선생님이 “스트리트”라고 말하면 지목받은 학생이 칠판에 ‘street’라고 쓰는 수업이었다. 들을 줄만 알고 아직 영어를 쓸 줄 몰랐던 소년이 안절부절못하고 있을 때 선생님이 소년의 이름을 불렀다.

“박준수. 앞으로 나오세요.”

소년의 발걸음은 무겁기만 했다. 이제 웃음거리가 되거나 ‘바보가 전학 왔다’고 소문날 판이었다. 그때 선생님이 입을 열었다.

“선생님이 전학 올 거라고 얘기했던 선교사님 자녀가 바로 준수야. 한국이라는 곳에서 태어나서 우리와는 전혀 다른 말을 배웠고 한국어를 아주 잘한단다. 준수야, 선생님 이름을 한국말로 써 줄래? 내 이름은 ‘자넷’이야.”

소년은 귀를 의심했다. ‘한국어로 쓰라고? 영어가 아니고?’ 분필을 잡고 칠판에 선생님의 이름을 또박또박 적었다. 두 글자 ‘자넷’이었다. 그러자 여기저기서 환호가 터져 나왔다. “내 이름도 써 줄래? 난 줄리엣이야” “난 스티브야.” 언제 소문이 났는지 수업이 끝나자 다른 반에서도 한국어로 이름을 써 달라는 학우들이 몰려왔다. 소년은 그날 선생님의 이야기를 오래도록 잊지 못했다.

“얘들아. 준수가 한국어를 참 잘하지? 너희도 선교사가 되려면 다른 나라 말을 이렇게 잘해야 하는 거야.”

선생님은 ‘영어 못하는 아이’가 될 뻔했던 소년을 ‘한국어 잘하는 아이’로 만들어줬다.

“주께서 나를 돌보시는 날에 사람들 앞에서 내 부끄러움을 없게 하시려고 이렇게 행하심이라 하더라.”(눅 1:25)

타인의 시선에 대한 부끄러움은 내 것이 아니다. 부끄러워하지 말아야 할 것을 부끄러운 것으로 만드는 자들의 부족함이 부끄러움과 수치의 대상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부끄러움을 없게 하시려 했던 것처럼 그의 제자도를 따르는 이들이라면 편견을 바른 시선으로 메우기에 부족함 없는 태도를 견지해야 한다.

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