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곽 드러낸 ‘트럼프 모델’… 2주간의 물밑 담판 시작

입력 2018-05-24 05:05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북·미 정상회담을 목전에 두고 막판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 체제 안전 보장을 확언하며 그간 고집하던 일괄타결 방식의 핵 폐기 모델에서 약간 물러설 수 있다는 뜻을 내비쳤다. 동시에 사정이 여의치 않으면 북·미 정상회담 개최를 고집하지 않겠다는 최후통첩도 함께 내놨다. 북·미 대화의 최종 목표는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비핵화(CVID)’라는 점도 재차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메시지는 미국이 일방적 핵 포기를 강요하면 북·미 정상회담을 재검토할 수밖에 없다는 김계관 북한 외무성 제1부상 담화에 대한 첫 반응으로 해석된다. 김 제1부상은 ‘선 비핵화, 후 보상’을 의미하는 ‘리비아 모델’에 특히 거부감을 보이며 미국의 진정성에 강한 의문을 제기한 바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런 북한의 의구심을 해소하면서 북·미 정상회담에 응할 용의가 있음을 재확인했다. 동시에 트럼프 대통령은 “싱가포르 회담이 열릴지 안 열릴지 두고 봐야 할 것이다. 열리면 아주 좋겠지만 열리지 않아도 괜찮다”며 정상회담 연기도 함께 언급함으로써 북한의 페이스에 일방적으로 끌려가지도 않을 것임을 분명히 했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23일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이 요구하는 CVID가 리비아 모델과 같지 않으며, 따라서 북한이 성의를 보인다면 보상 조치가 즉각 이뤄질 수도 있음을 시사했다”며 “트럼프 대통령 임기 내에 북한이 비핵화를 약속하고 관련된 주요 조치를 신속히 취해준다면 체제안전 보장과 경제적 보상을 해주겠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제안에 대한 북한의 직접적인 반응은 나오지 않았다. 북한 당국이 함경북도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일정을 예정대로 진행하는 점, 한·미 정상회담 직후 우리 측 공동취재단의 방북을 전격 허용한 점을 미뤄보면 북한도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을 진지하게 검토 중인 것으로 추측된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이날 개인 필명 논평에서 “미국이 제재를 주권국가들에 대한 내정간섭과 정권교체의 수단으로 써먹고 있다”고 미국을 비난했지만 한·미 정상회담 결과를 염두에 둔 기사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미국의 대북 핵 불사용 담보와 적대시정책 폐기 등 군사적 측면에서의 안전 보장을 강하게 희망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한·미 정상회담에서 내놓은 발언만으로는 북한 요구사항을 충족하는지 여부가 제대로 드러나지 않는다. 현재 북한 경제의 최대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는 대북제재 해제 및 완화 역시도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

북한은 트럼프 대통령의 체제 보장이 어떤 내용인지, 회담 연기 발언의 진의가 무엇인지 등을 알아내기 위해 2주간 미국과 치열한 물밑 협상을 이어갈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다음 달 12일로 예정된 북·미 정상회담이 연기될 징후는 아직 포착되지 않고 있다. 북한과 미국 모두 정상회담을 앞두고 최대한 자신들의 요구사항들을 관철시키기 위해 강온 양면 전술을 구사하고 있다는 평가가 일반적이다.

김현욱 국립외교원 교수는 “한·미 정상회담의 한계도 있었지만 북·미 정상회담으로 가는 길은 열었다고 본다”면서 “비핵화 방법론은 큰 틀에서 합의가 됐지만 세부적인 내용은 북·미가 직접 풀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성은 기자 jse13080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