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세기를 함께 살아온 부부의 모습이 이렇게나 유쾌할 수 있다니! 책장을 덮으면서 독자들은 가장 먼저 부러운 마음을 갖게 될지 모른다. 결혼 50주년을 맞아 시집 미안하다, 별들아!(꽃자리)를 쓴 남편 민영진(78) 목사와 산문집 지구별에서 노닐다 (꽃자리)를 펴낸 아내 김명현(74) 감리교여성지도력개발원 이사 이야기다.
김 이사는 한국여신학자협의회 공동대표와 감리교여성지도력개발원장 등을 지낸 여성 신학자다. 그는 산문집에서 생생한 에피소드를 통해 남편 흉보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남편에 대한 은근한 사랑과 존경은 좀처럼 감춰지지 않는다. 산문집에는 웃음을 자아내는 에피소드가 넘쳐난다. 때론 폭소를 유발하고, 때론 배시시 웃게 만드는 글들이다. 그중 한 대목은 이렇다.
평소 책 읽고 원고 쓰기를 좋아하는 남편이 신문을 보고 있었다. 아내는 그 모습을 보다 못해 신문과 남편의 몸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자기를 안은 채 신문을 보라고 요구한다. 그런 자세로 한참 신문 보던 남편이 하는 말. “안아 주는 기계는 없나?” 귀여운, 그래서 사랑할 수밖에 없는 아내와 그런 아내를 늘 품어주는 남편의 사랑이 넉넉하게 느껴진다.
남편 민 목사의 시집도 만만치 않다. 그는 감리교신학대학교에서 구약학을 가르치고 대한성서공회 총무 등을 역임하며 평생 성경번역에 매진해 왔다. 이번 시집에선 총 4부로 나눠 자기성찰적인 고백의 시들을 들려준다. 평생 하나님 말씀을 가르치고, 번역하며 살아온 삶의 치열함이 느껴진다. 동시에 그런 삶을 가능케 한 배경엔 아내와 자식, 손주를 향한 속 깊은 사랑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손톱을 깎은 뒤 방바닥에 남아있던 손톱 조각 때문에 아내에게 잔소리 들은 일, 아내 말을 듣지 않고 서서 볼일을 본 뒤 화장실 변기 뚜껑을 내려놓지 않아 생긴 에피소드 등 노년의 소소한 일상을 시어로 담아냈다.
마냥 유쾌한 부부의 삶에도 골짜기와 동굴을 지나는 시간이 있었다. 이스라엘 유학 중 7개월 만에 나온 셋째 아들을 하루 만에 잃고 예루살렘 외곽 사울언덕에 묻었다. 둘째 아들은 여섯 살 때부터 임파선암을 앓는 등 고통과 아픔의 시간이 존재했다.
50년을 함께하며 두 아들을 목회자로 키워내고, 손자손녀들을 보며 행복해하는 부부는 앞으로 다가올 마지막 순간, 죽음에 대해 이야기한다.
“둘이서 오순도순 이야기하고 웃고 지내다가 누구라도 훌쩍 먼저 떠나면 남은 사람은 어떨까 생각해 본다… 나는 그가 없으면 캔도 하나 못 따고 건전지도 갈아 끼우지 못한다. 남편이 끝까지 나를 보살펴 주어야 하기 때문에 내가 먼저 죽고 싶은 거다.”(지구별에서 노닐다 116∼117쪽)
이런 아내에게 남편은 ‘우리 가는 날’이라는 시를 써 줬다. “당신이 나보다 먼저 간다면/나는 당신에게 해줄 것이 없네//…당신 안고, ‘여보 사랑해’ 하면/안 하던 짓 왜 하냐고 핀잔만 줄 거고/역마살도 다 사그라졌을 즈음이니/그냥 당신 옆에 함께 있을게” 인생 황혼녘, 결혼이라는 경주를 마무리하는 시점에 써 내려간 이들의 글은 따뜻하면서도 묵직한 울림을 준다.
▒곁들여 읽을 만한 책
‘결혼이란 무엇일까’ ‘이 사람과 결혼해도 될까’
결혼이란 무엇일까(주의것)는 결혼의 시작점에 서 있는 아내와 남편의 글을 담은 책이다. 남편 달이 정재헌과 아내 별이 이사랑이 357일간 이어진 신혼여행 중 써내려간 일기를 각각 묶었다. 같은 제목에 남편의 글은 하늘색 표지, 아내가 쓴 책은 분홍색 표지로 제작했다.
남편 정재헌은 버클리 음대를 졸업하고 자전거를 타고 다니며 전 세계 20여개국 선교여행을 마친 뒤 기독교 출판에 매진하고 있다. 아내 이사랑은 평생 독신을 서원하고 개신교 수도원에서 수도의 길을 걷다가 정재헌을 만나 결혼까지 이르렀다.
이들은 신혼여행지로 중국 옌지과 태국 치앙마이 등을 택해 그곳에서 살면서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을 가졌다. 신혼부부가 흔히 겪는 오해와 싸움 등 시행착오를 통해 한걸음씩 서로에게 더 다가간 부부의 솔직한 고백을 만날 수 있다.
이 사람과 결혼해도 될까?(규장)는 유명한 기독교상담가이자 '결혼예비학교'를 개척한 노먼 라이트의 책이다. 결혼하기 전 꼭 점검해 봐야 할 내용을 101가지 질문 형태로 정리해서 소개하고 있다. '상대를 위한 기도가 쉽습니까', '어린 시절 어떻게 양육 받았는지 서로 말해보세요', '결혼하고 나서 어떻게 로맨스를 유지해 나갈 건가요'와 같이 다양하면서도 구체적인 질문을 제안하고 있다.
김나래 기자 narae@kmib.co.kr
“안아 주는 기계는 없나?” 결혼 50주년 부부의 살가운 고백
입력 2018-05-24 00:00 수정 2018-05-24 08: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