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측 취재진 방북 무산됐지만 가능성 남아 있다

입력 2018-05-23 00:32
북한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취재를 위해 22일 오후 북한 원산에 도착한 외신 방송기자들이 갈마호텔 정원에서 방송 녹화를 하고 있다. 미국 영국 중국 러시아 기자들은 이날 중국 베이징 서우두공항에서 고려항공 전세기를 타고 방북했다. 한국 취재진은 북측의 거부로 방북하지 못했다. AP뉴시스
북한 고려항공 승무원이 22일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행사 취재를 위해 베이징 서우두공항에서 출발한 원산행 고려항공에 탑승한 외신 기자에게 'KOREA'란 제호의 잡지를 나눠주고 있다. 뉴시스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현장을 취재하기로 했던 남측 취재진의 22일 방북이 무산됐다. 외국 기자들은 이날 중국 베이징 서우두공항에서 북한의 전세기를 타고 원산에 도착했지만 북측은 우리 기자들에게 비자 발급 등 필요한 조치를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날 서우두공항 현장에 안내를 위해 나왔다는 베이징 주재 북한 노동신문 기자가 한국 취재진에 남측 기자들의 방북이 가능할 것이라고 공개적으로 언급, 북한의 입장이 변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북한 체제의 특성상 상부의 지시를 받은 발언이라는 추측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실제로 통일부는 이날 밤 “23일 아침 우리 측 취재단 명단을 다시 전달할 예정”이라면서 북측이 수용한다면 평창 동계올림픽 전례에 따라 남북 직항로를 이용해 원산으로 이동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앞서 외국 기자 22명은 오전 9시48분(현지시간) 베이징 서우두공항에서 고려항공 전세기인 JS622편을 타고 출발, 원산 갈마비행장에 도착했다. 이들은 미국 AP통신과 CNN·CBS방송, 인터넷 매체 Vice, 영국의 스카이뉴스, 러시아 타스통신, 중국 신화통신과 중앙(CC)TV 소속이다. 숙소는 갈마초대소다. 외신기자단은 원산에서 하룻밤을 묵은 뒤 23일 오전 풍계리로 떠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스카이뉴스는 원산에 도착한 뒤 첫 생방송을 진행했다. 스카이뉴스 아시아 특파원인 톰 체셔는 “공항에 도착하자 북한 당국이 위성전화 장비를 압수했다”면서 “원산공항에서 우리를 맞은 모든 사람들은 제복을 입었으며 김씨 일가의 배지를 달고 있었다. 마치 마네킹처럼 보였다”고 전했다. 이어 “원산 갈마호텔 벽에서는 새로 칠한 페인트 냄새가 났다”면서 “언론인들에게는 감시인들이 붙어 있는데, 스카이뉴스의 감시인은 북한에서 국제관계를 공부하는 대학생”이라고 소개했다.

쳬셔는 또 “12시간 기차를 타고 이동한 뒤 다시 버스를 타고 4시간을 더 가야 풍계리에 도착한다”면서 “풍계리에서 다시 2시간 정도 산을 올라야 핵실험장 현장에 도착한다고 들었다”고 설명했다.

AP통신은 원산발 기사에서 “한국 기자들은 오지 못한 가운데 4개국 취재단이 풍계리로 가기 전에 원산에 들르게 됐다”고 전했다. 이어 “풍계리 핵실험장 폭파가 의미 있지만, 북한이 이미 이곳에서 6번의 핵실험을 했고 만약 실험을 더 할 필요가 있다면 새로운 실험장을 건설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제스처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또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와 관련해 실제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구체적인 사항들은 알려지지 않고 있다”면서 “이번에 북한이 기자들에게만 공개하고 핵무기 전문 조사관들을 제외해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앞서 CNN의 티모시 슈워츠 베이징 지국장은 서우두공항에서 북한이 비자와 취재비를 이유로 1만 달러(약 1080만원)를 요구했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수수료(fee)는 없었다”고 답했다.

한편 CNN은 워싱턴발 뉴스에서 핵 전문가를 인용해 “핵실험장을 폭파하면 핵 관련 정보들이 사라진다”면서 “마치 살인현장에서 증거를 없애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전했다.

장지영 이상헌 기자

베이징=공동취재단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