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수록 꼬이는 ‘최저임금 산입범위 개편’

입력 2018-05-23 05:05
국회 고용노동소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임이자 의원이 2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에서 회의 시작을 알리는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고용노동소위는 22일 새벽까지 최저임금 산입범위 개편안을 논의했지만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뉴시스
상여금·숙식비 포함엔 공감
노동·경영계 “새로 출범한 최저임금위서 재논의하자”
민주노총, 모든 대화 거부… 경제사회노동위원회로 갈등이 확산되는 분위기


내년 최저임금을 결정해야 하는 ‘데드라인’이 두 달도 채 남지 않았는데 최저임금 산입범위 개편 논의가 표류하고 있다. 국회에선 매월 지급되는 정기상여금을 최저임금에 포함하는 쪽으로 공감대를 형성했다. 하지만 일부 의원의 반대로 확정안 도출을 주저한다.

노동계와 경영계는 제각각 이유로 국회의 개편 방향을 반대하고 있다. 새로 출범한 최저임금위원회에서 다시 논의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여기에 민주노총이 모든 노사정 대화를 거부하겠다고 선언하면서 ‘셈법’이 더 꼬였다. 최저임금 산입범위 개편을 둘러싼 갈등이 사회적 대화기구로 번지고 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산하 고용노동소위원회는 22일 새벽까지 최저임금 산입범위 개편방안을 토의했지만 결론을 내지 못한 채 산회했다. 고용노동소위는 전날 오후에 회의를 시작해 밤을 샜다.

다만 논의 과정에서 여야 위원 다수가 어느 정도 공감대를 형성하는데 성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매월 정기적으로 지급하는 상여금, 현금성으로 지급되는 숙식비 등을 최저임금에 포함하는 내용이다. 지난해 말 최저임금 제도개선 태스크포스(TF)가 내놓은 권고안과 비슷하다. 기본급으로 월 157만원(최저임금 적용)을 받고 정기상여금으로 월 50만원, 숙식비 명목으로 현금 10만원을 받는 근로자를 예로 들어보자. 내년에 최저임금이 10% 오르면, 이 근로자의 기본급은 월 173만원이 된다. 이때 정기상여금과 숙식비가 최저임금에 포함되면 이 근로자가 받는 임금 수준은 173만원보다 많은 월 217만원으로 계산돼 최저임금 인상 대상에서 빠지게 된다. 기업 입장에선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타격을 줄일 수 있다. 반면 근로자는 임금인상 여지가 줄어들게 된다.

그러나 고용노동소위는 정의당 이정미 의원과 일부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반대로 확정안을 내지 못했다. 이 의원은 산입범위 개편을 최근 출범한 제11대 최저임금위에서 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의당 관계자는 “여전히 노사 이견이 큰 상황인데, 이를 국회가 독단으로 결정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이 의원의 입장은 노동계가 주장하는 것이기도 하다. 양대노총은 국회가 논의 중인 산입범위 확대를 최저임금 인상효과 무력화 시도로 본다. 때문에 최저임금위로 안건을 다시 가져와 노동계 입장을 최대한 반영하려 한다.

지난 21일 밤 김경자 민노총 수석부위원장은 소위 회의장을 찾아 민노총 출신인 홍영표 민주당 원내대표와 설전을 벌이기도 했다. 홍 원내대표는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 움직임에 반발하는 김경자 민노총 수석부위원장에게 “누가 봐도 불합리한 것은 고쳐야 한다. 정기 상여금은 적어도 최저임금 산입범위에 포함하는 것이 맞는다고 본다”며 “작년 7월부터 산입범위를 논의했는데, 노동계가 하나도 양보를 하지 않아 무산됐지 않느냐”고 말했다.

노동계 반발은 어렵사리 출범한 사회적 대화기구로 튀고 있다. 민노총은 급기야 “노사정대표자회의와 경제사회노동위원회의 어떤 회의에도 참여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국회 환노위가 기존 노사정위원회 명칭을 ‘경제사회노동위원회’로 바꾸고 참여위원 수를 10명에서 18명으로 늘리는 개정안을 의결한 지 채 하루가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나온 보이콧이다.

또 경영계마저 국회에 불만을 드러내 한층 복잡한 상황을 만들고 있다. 경영계는 1개월을 초과해 지급되는 정기상여금을 1개월 단위로 쪼개 지급하는 형태로 바꾸려면 단체 협약을 개정해야 하는데 노조가 받아줄 가능성이 낮다고 본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산입범위 개편 논의를 최저임금위로 가져가야 한다는 양대 노총의 제안을 받아들인 것도 이 때문이다. 이와 달리 중소기업중앙회는 국회에서 결론을 내야 한다는 입장이다. 경영계 내부에서도 의견이 엇갈리고 있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최저임금위에서 다시 논의를 하더라도 결론을 도출할 수 있을지 미지수라는데 있다. 제10대 최저임금위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올해 3월까지 회의를 거듭했지만 접점을 찾지 못해 공을 국회로 넘겼었다.

여기에다 최저임금위는 늦어도 7월 중순까지 내년 최저임금 인상폭을 결정해야 하는데, 올해 최저임금 인상효과를 분석하기에도 시간이 빠듯한 형편이다. 자칫 최저임금 산입범위 개편이 무한정 늦춰질 수 있다. 이 때문에 국회 환노위는 이번 회기 종료 전에 결론을 내려고 한다. 고용노동소위는 오는 24일 최저임금 산입범위 개편 방안을 다시 논의할 예정이다.

세종=정현수 김현길 최승욱 기자 jukebo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