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 기자단의 북한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취재가 결국 무산됐다. 외신 기자들은 22일 원산으로 향했지만, 남한 취재진은 끝내 북한으로부터 비자를 받지 못했다. 북한이 먼저 초청까지 해놓고 남한 기자단을 거부한 것은 어떤 이유에서든 납득하기 힘들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직접 문재인 대통령에게 한 약속까지 어긴 것이어서 더욱 유감스럽다. 북한에 대한 신뢰가 또 다시 무너지는 순간이다.
북한은 23∼25일 핵실험장 폐기 행사를 예정대로 진행할 것이다. 북한이 비핵화 의지를 국제사회에 실물로 보여주는 첫 기회이기에 포기할 리 없다. 그러나 한민족인 남한 기자조차 취재할 수 없다면 국제사회가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믿을 수 있겠는가. 더구나 참관단에는 전문가들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 전문가의 검증을 거쳐야만 진정으로 핵실험이 불가능한지 알 수 있다. 북한이 비핵화의 진정성을 보이려면 지금이라도 국제기구 전문가들을 불러 폐기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할 것이다.
최근 북한의 압박 공세는 전형적인 남한 흔들기 수법이다. 미국을 직접 자극하는 건 부담스럽기에 가장 약한 고리라 할 수 있는 남북 관계를 흔들어 대미 협상력을 높이려는 의도다. 남한을 움직여 최대한 몸값을 올리려는 상투적 전략이다. 북·미 협상 과정에 이견이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북한의 이 같은 태도는 북·미 정상회담이 성공적으로 끝나 비핵화 이행 과정에 들어간다 해도 되풀이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어떤 배경과 목적이든 북한의 비핵화 의지에 대한 의구심은 커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정상끼리 합의한 사안을 이행하지 않는 것은 정상 국가의 자세가 아니다. 북한은 요구 사항이 있다면 공식 협상 테이블에서 제기하고 관철하는 게 올바른 방향이다. 북한이 구태의연한 전술로 상황을 벼랑 끝으로 몰고 간다면 정상국가로 가는 마지막 기회마저 놓칠 수 있음을 명심하기 바란다. 특히 ‘핵 숨긴 비핵화’ 의도가 있다면 현 체제를 유지하기 힘들 것이다. 한·미는 어떤 경우에도 북한의 엄포에 흔들리지 말고 함께 나아가야 한다. 억지 주장을 남발하는 북한을 달래기 위해 비핵화 원칙을 훼손해선 안 된다. 연합훈련을 비롯한 한·미동맹의 근간을 흔들려는 북한의 시도에는 분명하게 선을 그어야 한다.
[사설] 北, 南 기자단 취재 거부… 비핵화 의지 의심스럽다
입력 2018-05-23 05: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