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캐스팅보트 쥔 국민연금마저 미온적… 결국 스톱

입력 2018-05-21 21:56
현대자동차그룹이 지배구조 개편을 위해 29일 열기로 했던 현대모비스 주주총회를 21일 전격 취소했다. 현대모비스를 분할해 존속회사를 그룹의 지배회사로 삼는다는 지배구조 개편안 실현도 불투명해졌다. 빨간색 신호등 뒤로 서울 양재동 현대차 사옥이 보인다. 뉴시스
현대자동차그룹이 그동안 전력을 쏟아왔던 지배구조 개편 카드를 21일 스스로 접었다. 캐스팅보트를 쥐고 있는 국민연금의 찬성을 확신할 수 없게 된 점이 가장 큰 이유로 분석된다. 향후 지배구조 개편안에 대해 여러 ‘플랜 B’ 시나리오가 거론되고 있지만 명확한 방향은 알기 어려운 단계다.

현대차의 지배구조 개편안에 대해서는 미국계 헤지펀드인 엘리엇이 맨 처음으로 반대 깃발을 들었다. 이때만 해도 엘리엇의 현대차그룹 지분이 1.6%에 불과해 영향력이 미미할 것이라는 해석이 많았다. 정의선 부회장은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직접 “엘리엇에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국내외 주주들에게 영향력이 큰 글로벌 의결권 자문사인 ISS와 글래스루이스 등이 반대표를 행사하라고 권고하면서 기류가 바뀌기 시작했다. 현대차그룹은 이때까지만 해도 ‘원안대로 갈 길을 가겠다’는 입장이 강했다. 특히 현대차그룹은 ISS의 반대 권고에 대해 장문의 반박문을 내고 “ISS의 결정이 심각한 오류를 범하고 있으며 시장을 호도해 심히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국민연금의 의결권 자문을 맡은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의 반대 권고는 ‘결정타’가 됐다.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는 현대모비스 분할·합병안에 대한 권한을 외부위원들로 구성된 의결권전문위원회에 넘겼다. 국민연금 사정을 잘 아는 한 관계자는 “국민연금에서 의결권전문위원회로 권한을 넘긴 것 자체가 분할 반대 의견을 내기 위한 ‘수순 밟기’라는 해석이 많았다”고 전했다.

현대차그룹 안팎에서는 9.82%의 지분을 가진 2대 주주 국민연금이 반대할 경우 지배구조 개편안은 물 건너간다는 관측이 많았다. 의결권전문위원회는 이번 주 현대모비스 분할·합병안에 대한 입장을 정할 예정이었지만 현대차그룹이 지배구조 개편 카드를 접으면서 심사 일정을 중단하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모비스 주가가 주식매수청구권 행사가격(23만3429원) 언저리에 머무는 상황도 현대차그룹에 부담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주식매수청구권은 분할·합병에 반대하는 주주들이 회사에 보유 중인 주식을 행사가격에 사 달라고 요청할 수 있는 권리다. 주가가 주식매수청구권 행사가격 근처에 머물면 분할·합병에 반대하는 주주가 늘어난다. 이들의 주식을 되살 경우 현대차로서는 비용 부담이 크게 증가한다. 현대차그룹 측은 지배구조 개편안 철회에 대해 “시장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적극 반영한 것”이라며 “개편안을 무리하게 강행하지 않고 유연한 의사결정을 내렸다”고 밝혔다.

현대차그룹은 지배구조 개편안과 관련해 ‘플랜 B’를 고려해야 할 형편이다. 현재의 순환출자 구조를 해결하라는 정부의 압박이 강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동안 준비했던 개편안이 주주총회를 열기도 전에 무산되면서 새로운 안을 만들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현대차그룹 안팎에서는 여러 가지 시나리오가 거론되고 있다. 먼저 지배구조 개편 반대의 핵심 논리가 두 회사의 합병 비율 문제인 만큼 이를 재조정한 뒤 다시 지배구조 개편을 시도하는 안이 있을 수 있다.

지배구조 개편의 ‘뼈대’를 원점부터 다시 검토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그룹 관계자는 “단순히 현대모비스와 현대글로비스 합병비율을 조정할 경우, 또 글로비스 주주의 반발이 있는 제로섬 게임이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추가 주주친화 정책을 제시할 가능성도 있다. 앞서 현대차와 현대모비스가 자사주 소각 계획을 밝힌 것 외에 추가로 주주 이익을 보장할 수 있는 방안을 내놓는 시나리오다. 다만 주주친화 정책을 더 내놓더라도 주주총회까지 취소된 상태라 주주에게 ‘약발’이 세지 않을 것이라는 회의적 시각이 많다.

임성수 기자 joylss@kmib.co.kr

그래픽=공희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