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대통령, 北 견인-美 설득 ‘고심’… 무거운 발걸음 출국

입력 2018-05-21 23:51
문재인 대통령과 부인 김정숙 여사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위해 21일 오후 경기도 성남 서울공항에서 전용기로 향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갑자기 강경해진 북한의 태도를 완화시킬 방안을 협의하고 비핵화 의제 관련 현안도 조율할 전망이다. 뉴시스

북·미 회담 20여일 앞 부담 가중… 우선 북의 체제보장 우려 전달
비핵화 이전 ‘보상문제’ 논의… 성과 따라 남·북 관계 개선 전망


문재인 대통령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한·미 정상회담을 하기 위해 21일 워싱턴으로 출국했다. 이번 정상회담의 키워드는 한반도 명운을 가를 북·미 정상회담의 동력 회복이다.

‘중재자’ 문 대통령의 발걸음이 가볍지만은 않다. 트럼프 대통령에게 북한의 반발 배경을 이해시키고, 한·미 간 공조도 재확인하며, 북한 비핵화를 위한 세부 로드맵도 조율해내야 하는 삼중고에 처해 있다. 문 대통령은 북·미 정상회담을 불과 20여일 앞두고 불거진 북·미 간 불신을 털어내는 데 주력할 것으로 예상된다. 연일 대남, 대미 강경책을 펴고 있는 북한이 북·미 정상회담 궤도에서 이탈하지 않도록 유인하면서 ‘완전한 핵 폐기(CVID)’라는 당초 목표를 속도감 있게 달성하기 위한 세부 로드맵이 조율될 전망이다.

문 대통령은 우선 체제 안전 보장과 관련된 북한의 의중을 트럼프 대통령에게 전달할 것으로 관측된다. 구체적으로는 북한이 비핵화를 위한 중대 조치를 취할 경우 완전한 비핵화 이전이라도 미국이 내줄 수 있는 보상 문제가 논의될 가능성이 있다.

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은 22일(현지시간) 배석자 없는 단독회담을 한 뒤 업무 오찬을 겸해 확대회담을 가질 예정이다. 한·미 정상회담의 결과물은 단독회담 때 큰 윤곽이 잡힐 것으로 보인다. 정부 소식통은 “북한은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완전한 비핵화의 길로 들어서긴 했는데, 실제 트럼프 행정부와 세부 의제를 조율하는 과정에서 예상 밖의 강한 요구들이 나오자 주춤하는 것 같다”며 “한·미 정상이 북한에 ‘비핵화를 해야만 경제적 보상 등 밝은 미래가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주지시킬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최근 북한의 태도 변화와 관련, 북·중 관계 밀착에 의구심을 갖고 있다는 점도 문 대통령이 적극 설명할 부분이다. 이는 비핵화 논의가 ‘한·미 대 북·중’의 대립 구도로 흘러가지 않도록 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다.

23∼25일로 예정된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는 북한의 비핵화 진정성을 미국에 확인시키는 계기라는 점에서 상징성이 있다. 시점상 한·미 정상회담 종료 후 풍계리 핵실험장 폭파가 이어지는 수순이어서 북한 역시 한·미 정상회담 결과를 주목할 것으로 보인다.

한·미 간 비핵화 조율이 순조롭게 이뤄지면 최근 경색된 남북 관계도 자연스럽게 풀릴 전망이다. 북한이 한·미 연합 공중훈련을 문제 삼아 남북 고위급 회담을 일방 취소하고, 탈북자 송환 등 민감한 문제를 들고 나와 한국을 압박하는 건 미국에 영향력을 행사해 달라는 의미로 해석된다.

전직 외교부 고위 당국자는 “북·미 정상회담에서 비핵화 시한이 합의되고 그것이 이행될 경우 언제부터 제재를 완화한다는 식의 구체적 성과물이 나올 수 있도록 사전에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한국 정부의 역할”이라며 “문 대통령은 중재자가 아닌 당사자로서 북·미 양측을 촉진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북한 특유의 판 흔들기 전술에 맞서 한·미가 굳건한 공조를 재확인할 필요도 있다”고 강조했다.

권지혜 기자 jh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