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엇→ISS→국민연금… 차례로 발목잡힌 현대차 지배구조 개편

입력 2018-05-21 21:59
사진=뉴시스

현대차그룹은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재벌그룹의 지주사 전환 압박이 이어지자 현대모비스와 현대글로비스의 분할·합병을 통한 순환출자 구조 해소를 골자로 한 지배구조 개편안을 추진했다.

현대차그룹은 지난 3월 28일 순환출자 고리를 해소하기 위해 그룹사와 대주주 간 지분 매입·매각을 추진하고 이 과정에서 현대모비스와 현대글로비스를 분할·합병하는 지배구조 개편안을 발표했다. 현대모비스에 대한 책임경영을 기반으로 현대모비스가 미래자동차 기술의 방향성을 잡으면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가 서비스·물류·부품·소재·금융 등 개별 사업부문을 관리하는 청사진을 제시한 것이다.

핵심은 현대차그룹 대주주가 순환출자 고리를 해소하면서 동시에 안정적인 경영권을 확보하는 데 있다. 현대차그룹은 ‘현대모비스→현대자동차→기아자동차→현대모비스’로 이어지는 순환출자 지배구조를 형성하고 있다. 현대모비스와 현대글로비스의 분할·합병은 사업구조 개편의 첫 단계이며 합병 후 정몽구 회장과 정의선 부회장이 현대글로비스 주식 처분 등으로 ‘실탄’을 확보하고 존속 현대모비스 지분을 사들여 순환출자 고리를 풀 것으로 예상돼 왔다.

주식 처분 과정에서 정 회장 부자가 지불해야 하는 양도세 규모만 최소 1조원을 웃돌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임에도 현대차그룹이 지배구조 개편을 밀어붙인 것은 지난해 12월 국회를 통과한 상속세 및 증여세법 개정안 때문이다. 일감 몰아주기에 대한 막대한 과세 압박이 커지는 가운데 당장 지주회사 전환이 어려운 현대차그룹으로선 순환출자 해소에 먼저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는 관측이다.

하지만 지배구조 개편안이 발표 후 4월 초 미국 헤지펀드 엘리엇이 현대차그룹 계열사 지분을 1조원 이상 보유했다며 개입을 시사하면서 순조로울 것으로 보였던 개편 작업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엘리엇은 현대모비스가 현대글로비스 대신 현대차와 합병해야 한다는 진의를 드러내며 현대차 측에 포문을 열었다.

현대차그룹은 자사주 소각 등 주주친화 정책을 들고 나오면서 엘리엇과 정면승부를 예고했다. 현대차 측은 발행 주식 총수의 3%에 해당하는 보통주 661만주, 우선주 193만주 등 총 854만주, 9723억원 규모의 자사주를 소각하겠다고 밝히며 지배구조 시비를 잠재우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도 엘리엇 측 주장에 대해 “금산분리법을 고려하지 않은 제안”이라며 먼저 현대차그룹 쪽에 힘을 실어줬다.

이에 엘리엇은 지난 11일 현대차그룹의 개편안에 대해 공개적으로 반대 의사를 표하고 다른 주주들에게도 반대표를 행사할 것을 권고하는 것으로 맞섰다. 엘리엇에 동조하듯 세계 최대 의결권 자문사인 ISS와 글라스루이스도 개편안 반대를 권고했다. 외국인 주주들의 반대표 행사 가능성이 급격히 높아지면서 국면이 현대차그룹에 불리한 방향으로 흐르기 시작했다.

현대차그룹은 16일 “엘리엇과 의결권 자문사들의 주장이 심각한 오류를 범하고 있으며 시장을 호도하고 있다”고 반발했다. 임영득 현대모비스 사장을 비롯해 이원희 현대차 사장 등이 개편안 관련 입장문을 통해 지배구조 개편의 당위를 강조하고 나섰다. 하지만 21일 결국 임시이사회에서 주주총회 취소가 결의되며 한 발 물러선 모양새가 됐다.

정건희 기자 moderat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