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들어서야 마음을 추슬러 꺼낸 화폭에는 송홧가루가 꿈처럼 날아다녔다. 아내를 떠나보내고 1년간 칩거하다시피 했던 그였다.
‘바보 예수’의 화가 김병종(65) 서울대 미대 교수가 서울 관악구 서울대미술관에서 정년퇴임 기념전 ‘바보 예수에서 생명의 노래까지’를 20일 마쳤다. 김 교수는 회고전임에도 신작 ‘송화분분’ 시리즈 몇 점을 내놓으며 퇴임 이후의 작업세계를 예고했다.
전시 종료를 앞둔 지난 18일 미술관에서 김 교수를 만났다. 오전까지 내리던 비가 멎어 관악산 아래 캠퍼스에 동양화 화폭 같은 청신한 기운이 번지던 날이었다. 소설가인 아내 정미경 작가의 빈자리는 컸다. 연초 고인을 기리며 유작전을 연 그에게 “문학은 문학인에게 맡겨두고 당신 할 일이나 하라”며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이 일침을 놓자 정신이 번쩍 들었다는 김 교수. 붓을 다시 든 작가의 마음을 일렁이게 한 건 송홧가루다. 고향 전북 남원에서 보낸 유년의 풍경이다. 소나무가 꽉 찬 ‘송동’ 마을, 소년은 학교를 땡땡이치고 솔밭에서 놀았다. 세상을 노랗게 물들였던 생명의 가루가 문득 사무치게 그리웠다. 화폭엔 아이가 뛰놀고 소나무가 춤추듯 엉겨 있다.
“짝을 찾아 날아가는 최소한의 생명체이지요. 그 눈물겨운 이동 덕에 다시 새로운 소나무가 나고 자라는 게지요.”
아내를 잃고 다시 붙잡은 건 생명이었던 것이다. 전시장엔 ‘바보 예수’ ‘황색예수’ ‘생명의 노래’ 등 화업 40년을 일별하는 연작들이 대거 나왔다. 그는 동양화가이지만 중국의 수묵화적 정체성에서 벗어난 우리 것을 찾고 싶었다. 순백의 화선지 대신 닥종이에 흙을 섞어 발라 장판지 같이 누런 캔버스를 창안했고, 그 위에 예수를, 동물을, 꽃을 그렸다. 분청의 느낌을 내기 위해 작업을 하던 그는 나아가 골판지 위에 예수를 그리기도 했다.
교계로부터는 신성모독이다, 화단으로부터는 동양화에서 무슨 예수냐는 비판을 들었던 당시를 회고하며 그는 특유의 사람 좋은 미소를 지었다.
“예수라는 서양의 거대한 아이콘을 문인화풍의 동양화로 변주했다는 사실이 없었다면 우리 동양화의 세계는 시대적 낙후성에 부끄러워졌을 것”이라며 평단은 찬사를 보냈다. 지금 그에게 붙는 수사는 화려하다. 대영박물관이 작품을 소장한 작가, 르 피가로가 주목한 작가, 중국 시진핑 국가주석의 마음을 사로잡은 작가…. 여기에 글 잘 쓰기로 유명한 화가라는 꼬리표까지 따라붙는다.
그래서 퇴임 후 구상이 더 궁금했다. 그림과 글 두 마리 토끼를 예상했는데, 엉뚱한 답이 돌아왔다. 남원에 다문화가정을 위한 ‘손가락 그림 학교’를 만들고 싶단다. 그가 작품을 기증한 남원시립김병종미술관이 지난 3월 개관했다.
이곳에선 붓과 스케치북 같은 준비물이 없어도 손가락만 있으면 된다. 2006년 경기도문화재단의 요청으로 참가했는데, 다문화가정 아이와 엄마를 보듬는 데 상당한 효과가 있었다고.
“화가로서의 삶도 지속하겠지만, 공공적 요청을 받고 동참했던 시간도 의미가 있었어요. 경기도에서 노하우를 쌓았으니 고향 남원에서 이어가고 싶어요.”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
‘바보 예수’의 화가 김병종 “은퇴후 꿈요? 그림 학교죠”
입력 2018-05-21 21: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