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야당들이 불참한 가운데 치러진 베네수엘라 대선에서 좌파 출신의 니콜라스 마두로(55) 현 대통령이 6년 임기의 재선에 성공했다. 하지만 미국이 베네수엘라의 자금줄인 원유 수출을 제한하는 추가 제재를 예고하는 등 정치·경제적 위기는 더욱 심화될 전망이다.
현지 선거관리위원회는 20일(현지시간) 93% 이상 진행된 개표에서 마두로가 68%인 582만표를 얻어 당선됐다고 발표했다. 같은 좌파 진영 후보인 엔리 팔콘(56)은 21%의 지지율에 그쳤다. 마두로는 당선 뒤 “나의 승리는 민중의 승리”라며 자축했다.
마두로는 2013년 암으로 사망한 우고 차베스 전 대통령의 정치적 후계자다. 고교 졸업 후 버스 운전사로 일하던 그는 노조 지도자 시절이던 1992년 쿠데타 실패로 수감된 차베스의 구명운동에 나서면서 인연을 맺었다.
감옥에서 출소한 차베스의 대선 캠프에 합류한 그는 99년 정계에 본격 입문한 뒤 이듬해 국회의원으로 당선됐다. 차베스 집권 14년간 국회의장과 외무장관, 부통령 등 요직을 두루 거쳤다. ‘차베스의 아들’을 자처하는 그는 대통령이 된 후 민영기업 국유화, 외환 및 가격 통제, 무상 복지 등 차베스의 좌파 포퓰리즘 정책을 충실히 계승했다. 하지만 그의 임기 시작과 함께 유가가 급락하면서 산유 부국인 베네수엘라는 빈곤의 수렁에 빠져들었다. 1만%가 넘는 살인적인 물가 상승과 빈번한 정전·단수, 식량난과 의약품 부족, 치안 부재 등으로 국민의 고통이 극에 달한 상태다.
2015년 12월 총선에서 승리한 야권은 이듬해 마두로에 대한 국민소환 투표를 추진했지만 여권의 방해로 무산됐다. 그는 지난해 퇴진을 요구하는 반정부 시위를 무력으로 진압했고, 이 과정에서 사망자가 125명이 나와 국제사회의 거센 비판을 받았다. 미국이 마두로 정권을 독재정권으로 규정하고 잇따라 경제 제재를 가하면서 상황은 더욱 악화됐다. 최근 2년 사이 100만명이 넘는 국민이 인근 국가로 이주했을 정도다.
마두로가 이번에 승부수로 띄운 조기 대선에서 승리했지만 야당의 불참과 국제사회의 반대 속에 치러진 ‘반쪽 대선’이라는 점 때문에 정통성 시비에서 자유롭지 못하게 됐다. 실제로 여권은 투표를 하면 포인트를 올려주는 ‘조국 카드’를 빈민층에게 제공하는 등 공공연하게 불법 선거운동을 벌였지만 투표율은 46.1%에 불과했다. 야권은 마두로의 당선을 “독재자의 대관식에 불과하다”고 비난했다. 블룸버그는 “마두로가 승리했지만, 패배자는 베네수엘라”라고 평가했다.
미 국무부는 부정선거로 대선이 치러진 만큼 결과를 받아들일 수 없으며 원유 수출 제재를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지난 14일 베네수엘라에 대선 강행을 취소하라고 최후통첩을 보낸 ‘리마그룹’도 미국과 보조를 맞출 예정이다. 리마그룹은 베네수엘라 위기를 평화적으로 해소하기 위해 캐나다 브라질 아르헨티나 멕시코 등 미주 14개국이 구성한 모임이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
베네수엘라 마두로 재선 성공… 美 “불법선거·원유제재”
입력 2018-05-22 05: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