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마약 투약 후 자해 사망 보험금 못 받는다”

입력 2018-05-20 19:49
마약 투약 후 환각 상태에서 자해해 사망했다면 상해사망 보험금을 받을 수 없다는 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7부(부장판사 김춘호)는 김모씨가 삼성화재해상보험을 상대로 “보험금을 지급하라”며 낸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했다고 20일 밝혔다.

김씨의 아들 이모씨는 2016년 3월 14일 필리핀 세부의 모텔을 돌며 수차례 필로폰을 투약했다. 같은 달 23일 마약 소지 등의 혐의로 필리핀 공항경찰대에 체포된 뒤 마약수사국에서 조사를 받았다. 유치장에 수감된 이씨는 3시간여 동안 환각 증세를 보이다 스스로 유치장 철창에 머리를 부딪친 뒤 쓰러졌다. 곧바로 시내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결국 사망했다. 사인은 ‘외상성 뇌손상으로 인한 심폐정지’였다.

김씨는 계약 내용을 근거로 보험사에 보험금 지급을 요구했다. 보험약관에는 ‘심신상실 등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자신을 해친 경우 보험금을 지급한다’고 규정돼있었다. 보험사는 그러나 “이씨 고의에 의한 사망에 해당한다”며 지급을 거절했다.

법원은 보험사 측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이미 수차례 필로폰을 투약한 경험이 있는 이씨는 환각 상태에서 폭력성이 나타나는 등 위험성을 알고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이어 “해당 약관은 의도하지 않은 심신상실로 자해할 경우를 구제하기 위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자해의 위험성을 충분히 예상하고도 불법적인 방법을 동원해 스스로를 심신상실 상태에 빠뜨려 발생한 사고”라며 “이는 보험금 지급사유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이가현 기자 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