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현대판 노예… 6년간 ‘무급’ 착취한 고깃집 사장님

입력 2018-05-19 05:05

지적장애인 황모(59·여)씨가 대전 유성구에 있는 A식당에 취업한 건 2012년 2월이었다. 정육식당인 그곳에서 그는 설거지와 같은 단순한 일을 맡았다. 근로계약서도 작성했다. 그런데 그 계약이 발목을 잡을 줄 몰랐다. 계약서에는 근로 시간이나 처우 등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이 단 한 줄도 없었다. 그저 ‘고용한다’는 걸 명시한 수준이었다.

황씨가 지적장애를 앓고 있다는 점을 알고 있던 식당 주인 김모(51·여)씨는 이를 악용했다. 처한 상황을 바로잡아주거나 황씨 입장을 대변해 줄 수 있는 가족도 없었다.

계약 이후로 황씨는 아침에 눈을 뜨고 일어나서부터 밤에 잠들기 직전까지 끊임없이 일을 하다시피 했다. 식당에서 먹고 자면서 주방을 오가는 일상은 하루도 거르지 않고 반복됐다. 지난해 11월 해고당할 때까지 5년10개월 동안 강도 높은 노동에 시달렸지만 황씨 손에 쥐어진 돈은 한 푼도 없었다. 사건을 수사한 대전지방고용노동청에 따르면 황씨가 받지 못한 임금과 퇴직금은 1억3000여만원에 이른다.

황씨가 한 장애인단체를 찾아가 도움을 요청하고 나서야 ‘노예 노동’은 민낯을 드러냈다. 이 단체가 고발을 하고 검찰과 경찰, 대전지방고용노동청이 나서 공조 수사를 했다. 식당 주인 김씨는 근로기준법 및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 위반 혐의로 17일 구속됐다. 대전지방고용노동청 관계자는 18일 “김씨가 혐의 사실을 모두 부인하고 있고 반성의 기미가 없어 죄질이 매우 불량하다”며 “경찰에서 보완 수사를 마치면 검찰에서 기소할 것”이라고 말했다.

구속 절차를 밟긴 했지만 김씨가 사회 통념에 걸맞은 무거운 벌을 받을지는 미지수다. 현행 근로기준법상 임금체불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을 내릴 수 있다. 하지만 실형 선고로 이어지는 경우는 많지 않다. 지난해 법원에는 황씨의 사례와 비슷한 사건 7건이 올라왔다. 이 가운데 실형을 선고한 사건은 4건에 그친다. 체불임금을 다 받지 못하는 일도 허다하다. 충남장애인권익옹호기관 박수진 관장은 “체불한 임금만이라도 받아주려고 하지만 업체 사장이 지급 능력이 없는 경우도 꽤 많다”고 전했다.

더 큰 문제는 제2, 제3의 황씨가 또 나올 수 있다는 점이다. 보건복지부의 등급 판정기준에 따르면 황씨는 지적장애 3급에 해당한다. 지능지수(IQ)가 50∼70 사이이고, 교육을 통해 사회·직업적 재활이 가능한 이들이다.

그러나 노동현장에서는 ‘서류상의 원칙’이 적용되지 않는다. 황씨처럼 노예 취급을 받으면 증세가 악화될 가능성이 높다. 박 관장은 “노동력 착취를 경험한 장애인들은 ‘나가면 받아주는 곳이 없다’고 세뇌돼 외부 노출을 극히 꺼려하고 장애가 더 심해지는 경우가 많다”며 “이들을 위한 지원이나 사후관리가 절실하다”고 말했다.

세종=신준섭 기자 sman321@kmib.co.kr

삽화=전진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