핫라인 통화 25일째 불발… 고위급·군사당국 회담 등 현안 조율 위한 일정도 연기
남북문제 후순위로 밀리고 남북·북미 회담 동시 진행에 인적 역량 한계 봉착 지적도
4·27 남북 정상회담 이후 남북 간 후속 협상이 좀처럼 진도가 나가지 않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간 ‘핫라인’은 지난달 20일 설치가 완료됐음에도 실제 통화는 25일째 이뤄지지 않고 있다. 판문점 선언에 명시된 군사적 긴장 완화를 위한 군 장성급 회담도, 후속 조치를 논의하기 위한 고위급 회담도 진행되지 않고 있다.
북한이 미국과의 정상회담 조율을 위해 외교력을 ‘올인’한 탓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지만 그동안 대미·대남 노선을 분리했던 북한이 정상국가화를 위한 외교라인 재편 과정에 돌입한 것 아니냐는 해석도 있다.
청와대는 남북 정상 간 핫라인 설치 직후 “4·27 정상회담에 앞서 통화가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지만 불발됐다. 4·27 정상회담 이후에도 “조만간 통화가 이뤄질 것”이라고 했으나 이 역시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14일 “남북 간 핫라인 통화는 일반적인 외국 정상 간 통화와는 결이 다르다”며 “정상 간 내밀한 이야기가 필요할 때 이뤄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청와대 내부에서는 핫라인 통화가 지연되는 데 대한 답답함도 새어나온다.
남북 간 현안 조율을 위한 회담도 일제히 연기되고 있다. 남북 고위급 회담은 지난 3월 29일 이후 열리지 못했다. 군사적 긴장 완화를 위해 합의한 군사 당국 회담과 장성급 회담도 진척이 없다. 이진우 국방부 부대변인은 군사 당국 간 접촉에 대해 “현재 진행되고 있는 사안은 없다”고 말했다.
남북 정상회담에서 적극적으로 나섰던 북한의 최근 변화는 우선 북·미 정상회담 준비에 따른 것으로 해석된다. 미국과의 협상을 진행 중인 과정에서 남북 문제가 후순위로 밀렸을 가능성이 높다.
북한 외교라인 수술 작업도 시작됐다는 평가다. 북한 외교정책은 원래 대미 관계를 책임지는 외무성 라인, 대남 관계를 총괄하는 통일전선부 라인으로 구분돼 있었다. 하지만 김 위원장은 남북 정상회담에서 대미 라인인 이수용 노동당 부위원장과 이용호 외무상을 대동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방북했을 때는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이 배석했다. 정부 관계자는 “김영철 부장은 북한의 과거 스타일대로라면 폼페이오 장관과의 자리에 함께해서는 안 되는 사람”이라며 “북한의 외교정책에 근본적 변화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북한의 인적 역량 자체가 남북 및 북·미 대화를 동시에 진행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10년가량 대외 관계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고, 과거 대외정책 전면에 나섰던 고위급 인사들이 숙청되거나 사망하면서 북한 내에 대외 관계를 총괄할 인재가 부족하다는 뜻이다.
문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주재한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북한의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발표에 대해 “완전한 비핵화를 위한 초기 조치로서 비핵화가 시작됐다는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평가했다. 이어 “북한이 북·미 정상회담 성공을 위해 상당한 성의를 보여주고 있고, 김 위원장이 제게 약속했던 사항들을 성실히 이행하고 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하고 싶다”고 말했다.
강준구 기자 eyes@kmib.co.kr
남북, ‘4·27’ 이후 잠잠… 북·미 회담에 밀렸나
입력 2018-05-15 05: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