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총수일가 ‘갑질’하다간 재무평가 불이익

입력 2018-05-15 05:05

평판 나빠지면 낙제 성적표… 고강도 구조조정 불가피
한진·LG·롯데 해당 가능성… 주채무계열 31개 기업집단 선정


앞으로 경영진이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거나 시장 질서를 교란하면 그 기업의 재무구조 평가 점수가 깎인다. ‘물벼락 갑질’ 논란을 빚은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의 사례처럼 총수 일가가 갑질을 일삼다가 기업 평판이 심각하게 나빠지면 ‘낙제 성적표’를 받을 수도 있다. 이렇게 되면 자산 매각, 부채 감축 등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해야 한다.

금융감독원은 매년 금융기관 신용공여액(금융기관으로부터 빌린 돈)이 일정 금액 이상인 기업집단(그룹)을 주채무계열로 지정한다. 주채무계열에 선정된 기업집단은 정기적으로 주채권은행의 재무구조 평가를 받는다. 결과가 나쁘면 주채권은행과 재무구조 개선 약정을 하고 부채 비율을 줄여야 한다. 그래야 신규 대출이나 채권 상환 연장 등이 가능하다. 이 때문에 기업들은 재무구조 평가와 그 결과에 예민하다.

금감원은 올해부터 재무구조 평가에 ‘해외사업 위험’ ‘평판 위험’을 반영한다고 14일 밝혔다. 은행연합회는 이달 중 이사회를 열고 ‘채무계열 재무구조 개선 운영준칙’을 개정할 방침이다.

그동안 주채권은행의 재무구조 평가는 매출액영업이익률, 이자보상배율 등 정량평가 항목에 초점을 맞춰 이뤄졌다. 정성평가 항목은 지배구조 위험(경영권 분쟁 소지), 영업 전망, 산업 특수성 등이다.

이를 바꿔 금감원과 은행연합회는 정성평가를 강화키로 했다. 우선 정성평가 배점을 ‘-4점’까지 감점만 적용하는 것으로 변경했다. 기존에는 중요도에 따라 +2점에서 -2점까지 가감했었다.

평가 항목에는 ‘경영진의 사회적 물의 야기(횡령·배임 등 위법행위 및 도덕적 일탈행위 등)’ ‘시장 질서 문란행위(일감 몰아주기 등 공정거래법 위반 및 분식회계 등)’를 추가했다. 이른바 ‘오너 리스크’로 그룹 전체의 평판이 나빠지고, 기업 활동이 위축되는지를 꼼꼼하게 따지겠다는 취지다. 최근 발생한 한진그룹 총수 일가의 갑질·탈세 논란, LG그룹 사주 일가의 탈세 혐의, 롯데그룹 총수의 뇌물 공여 혐의 등이 여기에 해당될 수 있다.

또 해외 계열사의 부채를 재무구조 평가에 반영한다. 대기업들의 해외 진출이 잦아지면서 해외사업 위험 요인도 늘고 있어서다. 해외 계열사가 차입금을 갚지 못해 국내 계열사로 신용 위험이 옮겨오는 걸 미리 파악하려는 목적이다.

금감원은 올해 주채무계열로 31개 기업집단을 선정했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금융기관 신용공여액이 1조5166억원 이상인 기업집단이다. 31개 주채무계열 소속 기업은 4565개(국내 법인 1199개, 해외 법인 3366개)다. 전체 신용공여액은 240조6000억원이다.

상위 5대 주채무계열은 삼성, 현대자동차, SK, LG, 롯데다. 상위 5대 주채무계열의 신용공여액은 111조2000억원에 이른다. 전체 주채무계열 수는 지난해와 비교해 5곳(성동조선, 아주, 이랜드, 한라, 성우하이텍)이 줄었다.

김찬희 기자 chkim@kmib.co.kr

삽화=공희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