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김영하의 책읽는 시간’ 시초
비교적 젊은 작가가 팟캐스트 출연 멀티미디어 통한 양방향 소통 활발
일부 “작가가 방송에 출연하면 작품에 몰두할 시간 줄어들 것”
“글 쓰는 자아와 책 만드는 자아. 이 둘은 어떻게 같고 어떻게 다를까요.” 그는 시를 쓰면서 책을 만드는 김민정 출판사 난다 대표에게 이런 무거운 질문을 던지고는 이내 “어쩜 둘 다 그렇게 잘 하실 수가 있죠?”라며 너스레를 떤다. 인터넷 서점 예스24가 운영하는 팟캐스트 ‘예스책방 책읽아웃’의 한 장면. 김 대표를 들었다 놓는 진행자는 시인 오은(36)이다.
시나 소설을 쓰면서 방송 진행자로 활약하는 멀티라이터(Multi-Writer)들이 주목받고 있다. 오은은 지난달부터 ‘책읽아웃’에서 ‘오은의 옹기종기’란 코너를 진행하고 있다. 한 문학출판사 관계자는 14일 “작가들이 방송을 통해 책을 소개하면 독자들이 저자와 책을 더 친숙하게 느낄 수 있다”며 작가들의 방송 출연을 환영했다. 멀티라이터의 시초는 소설가 김영하(50)다.
그는 2010년 도서 팟캐스트 ‘김영하의 책읽는 시간’을 시작했다. 자신이 쓴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에서부터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까지 다양한 국내외 작품을 소개해왔다. 6만6000여명이 구독 중이다. 김영하는 지난해 tvN 예능 ‘알쓸신잡(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에 출연해 ‘예능감’을 유감없이 발휘하기도 했다.
작가들은 방송을 통해 본인에 대한 인지도를 높일 뿐만 아니라 독서 시장을 넓히는 역할까지 톡톡히 하고 있다. 지난해 한국 소설 중에서 ‘82년생 김지영’이 가장 많이 팔렸지만 소설가 중에서는 김영하의 작품이 전체적으로 가장 많이 읽혔다. 교보문고 관계자는 “김영하는 팟캐스트를 통해 고정 팬을 많이 갖고 있는 데다 ‘알쓸신잡’까지 출연하면서 많은 독자들이 관심을 가졌다”고 설명했다. 소설가 김중혁(47)은 출판사 위즈덤하우스가 제작하는 팟캐스트 ‘이동진의 빨간책방’에 출연하고 있다. 구독자가 12만명이 넘는 도서 분야 1위 팟캐스트인 ‘빨간책방’은 독자 수만 명을 움직이는 것으로 입소문 나 있다. 김중혁은 SK브로드밴드의 Btv 영화 프로그램 ‘영화당’도 진행 중이다.
작가들은 팟캐스트 출연이 작가에게도 도움이 된다고 입을 모은다. 김중혁은 “원하는 책들만 보다가 방송을 위해 다양한 책을 보니까 공부가 많이 된다”고 했다. 교보문고가 만드는 팟캐스트 ‘낭만서점’의 첫 진행자였던 소설가 정이현(43)은 “독서 공동체를 이루는 듯한 내밀하고 친밀한 느낌을 가질 수 있어 좋았다”고 했다.
팟캐스트를 하는 이들은 비교적 젊은 작가들이다. 멀티미디어에 친숙하고 양방향 소통에 거부감이 없다. 한 중견 소설가는 “과거 작가들이 문학을 신성시했다면 요즘 세대는 영화 음악 방송 등을 문학의 연장선으로 이해한다”며 “앞으로 방송 등 다양한 활동을 하는 작가들이 더 늘어날 것 같다”고 전망했다.
작가의 방송 출연은 서점과 출판사의 전통적 마케팅에 비해 방송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는 현실을 반영한다. 소설가 장강명(43)은 “참신한 출연자를 찾는 방송, 홍보를 원하는 출판사, 독자를 만나려는 저자들의 이해가 맞아떨어진다”고 말했다. 그는 팟캐스트 ‘요조 장강명, 책 이게뭐라고!’와 tvN ‘외계통신’에 출연하고 있다. 한 대형서점 관계자는 “방송 출연은 작가들의 수입원 다양화에도 도움이 된다”고 했다. 하지만 한 젊은 소설가는 “방송 출연이 작가들에게 바람직한 현상인지 잘 모르겠다. 방송에 출연하면 작가가 작품에 몰두할 시간이 줄어들지 않냐”고 했다.
강주화 기자 rula@kmib.co.kr
글만 쓴다고요?… 방송 진행도 하는 멀티라이터 각광
입력 2018-05-15 05: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