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학이 낳은 불후의 천재작가 이상(본명 김해경)을 오늘날 우리는 어떻게 만날 수 있을까. 이상이 살았던 1930년대와 우리가 살고 있는 2010년대는 80년이라는 세월이 가로놓여 있다. 그러나 80은 숫자에 불과하다.
이상이 고민했던 문제의식은 그가 남긴 문학 텍스트에 남겨져 있고, 그 텍스트는 지금도 다양한 해석을 낳을 만큼 난해하기로 유명하다. 이 같은 난해함은 한마디로 이상의 분열된 자아에 기인한다. 하지만 분열된 자아야말로 젊음의 표상이자 발광체가 아니겠는가.
더블케이필름앤씨어터의 창작 뮤지컬 ‘스모크(Smoke)’는 이상의 문제의식이 우리 시대 젊은이들의 고민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인상적인 작품이다.
안내방송에서 “그럼 이제 연기처럼 피어오르겠습니다”라는 멘트가 흘러나오고 막이 오르면 이상의 본명에서 따온 주인공 ‘해(海)’가 무대에 엎드려 있다. ‘해’는 꿈을 꾼다. 꿈, 그건 억압과 치욕과 오해로 점철된, 분열된 자아의 꿈이다. 1934년 7월 24일부터 조선중앙일보에 30회 기획으로 ‘오감도’를 연재하던 중 독자들로부터 ‘생소하고 괴이하고 해괴한 시’라는 빗발치는 항의를 받고 15회 만에 연재를 중단한 이상은 좌절감에 시달린다.
한 편의 스릴러처럼 다가오는 ‘오감도 제 15호’. 그건 나를 쫓는 나(‘해’), 나를 위조한 나(‘초’), 나와 떨어질 수 없는 나(‘홍’)의 이야기로 변주된다. 좌절한 자의 꿈에 ‘해’의 분신인 ‘초(超)’가 등장한다. “나는 두려움에 떨고 있다. 나는 어디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지…. 어떻게 하면 나로 살 수 있을까?”
그건 ‘초’가 아니라 거울에 비친 ‘해’의 독백이기도 하다. “나는 거울 속의 나를 근심하고 진찰할 수 없으니 퍽 섭섭하오.”
위조된 자아 ‘초’는 ‘해’에게 여급 출신인 ‘홍(紅)’을 납치하자고 제안한다. 이상의 애인이었던 다방 ‘제비’의 마담 ‘금홍’을 연상시키는 ‘홍’은 둘 사이를 오가며 독보적인 존재감으로 노래한다. “우리의 생은 그저 감옥이구나…. 갇혔구나. 빠져나갈 길 없는 출구 막힌 세상, 연기가 되면 여길 빠져나가려나.”
간과하기 쉽지만 유성기에서 음악이 흘러나오는 후미진 아지트로서의 무대 공간은 인간의 뇌를 닮아있다. 세 명의 배우가 서로의 자아에 침투하는 삼투압의 구조를 갖춘 뇌의 질료는 건축가 이상이 조감도를 그리던 모눈종이를 연상시킨다. 그 뇌에 레이저빔으로 형상화되는 네모, 원, 삼각형…. 기호화된 이 형상들은 꿈을 넘나드는 욕망과 좌절을 상징하는 일종의 시뮬라크르다.
3옥타브를 넘나드는 고음을 능숙하게 소화해내는 배우들의 열창은 무대 뒤에서 직접 연주하는 피아노 반주를 타고 점점 빨라진다. 그 열창은 ‘나’를 찾기 위해 발버둥치는 젊은이들의 외침이자 발언이자 자유의 혼이다. 출구 없이 갇혀있는 혼. 그 혼이야말로 어디로도 갈 수 있고 무엇이라도 될 수 있는 연기(Smoke)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천장에서 떨어지는 조명으로 재현한 거울이다. 거울을 사이에 두고 ‘해’와 ‘초’가 서로 잡아당기는 자아 분열의 장면은 무대 테크닉의 개가로 꼽을 만하다.
7월 15일까지 공연이 열리는 서울 대학로 대명문화공장 2관은 청년 이상이 화가이자 시인의 꿈을 꾸었던 경성고공 건물에서 300m 거리에 있다. 고뇌하지 않으면 인간이 아니요, 우울하지 않으면 시대가 아닐 것이니 젊은이여, 고뇌와 우울로 지어진 천재작가 이상을 오늘의 그대들에 허(許)하라.<정철훈 시인·소설가, 평전 ‘오빠 이상, 누이 옥희’ 저자>
[리뷰] 더블케이필름앤씨어터의 창작 뮤지컬 ‘스모크(Smoke)’
입력 2018-05-14 18:37 수정 2018-05-14 23: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