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 탈출 경력 ‘콜럼버스 곰’
지리산 곰 개체수 늘어나 안전한 생태통로 마련 시급
지리산 반달가슴곰이 고속도로를 횡단하다 시속 100㎞ 가까운 속도로 달리던 관광버스에 치였지만 치명적 부상은 피한 것으로 확인됐다. 전문가들은 반달가슴곰 개체 수 증가로 서식지 확대가 불가피한 상황이라 곰들이 안전하게 오갈 수 있는 생태통로 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환경부 국립공원관리공단은 지난 11일 오후 2시쯤 경남 함양군 태봉산에서 지리산 반달가슴곰 KM53을 포획했다고 13일 밝혔다. 공단은 지난 5일 새벽 대전∼통영 고속도로 함양분기점 인근에서 “곰으로 짐작되는 동물과 교통사고가 났다”는 버스기사 양동환(59)씨의 신고를 접수했다. 공단은 버스에 묻은 짐승 털과 배설물 유전자를 분석해 KM53임을 확인하고 추적에 나섰다.
양씨는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버스 선반에 있던 가방과 소지품이 다 떨어질 정도의 충격이었다. 마치 승용차를 들이받은 것 같았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그는 “(곰이) 아마 죽었을 것”이라고 신고했지만 KM53은 왼쪽 앞다리만 부러진 상태로 포획됐다. 버스 범퍼가 움푹 찌그러져 수리비로 200만원이 나올 만큼 큰 사고였으나 곰은 골절상만 입은 것이다.
포획 직후 KM53은 전남 구례군 국립공원관리공단 종복원기술원으로 옮겨져 진단과 치료를 받았다. 공단 측은 “방사선 검사 결과 KM53은 왼쪽 앞다리 어깨부터 팔꿈치까지 복합골절을 입은 것으로 확인됐다”며 “종합 진단은 나머지 검사 결과가 나와야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지리산에 서식 중인 반달가슴곰이 쉽게 이용할 수 있는 생태통로를 만드는 데 정부가 적극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개체 수가 늘어나면서 활동영역도 넓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현재 지리산에서 서식 중인 반달가슴곰은 총 56마리다. 조희경 동물자유연대 대표는 “이동하는 것은 야생동물의 본능 중 하나”라며 “반달가슴곰이 ‘로드킬’을 당하지 않도록 생태통로 조성 등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2015년 3월에 태어나 그해 9월 지리산국립공원에 방사된 수컷 반달가슴곰 KM53은 키 170∼180㎝, 몸무게 80∼90㎏으로 건장한 성인 남성 수준의 체격을 갖췄다. 지난해 6월과 7월에도 지리산에서 90㎞ 떨어진 경북 김천 수도산까지 탈출했다 붙잡혀 지리산으로 돌아왔다. 이 때문에 ‘콜럼버스 곰’으로 불린다.
손재호 기자 sayho@kmib.co.kr
시속 100㎞ 버스에 치이고도… 반달가슴곰, 골절상만 입었다
입력 2018-05-13 18:07 수정 2018-05-13 23: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