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년간 13시즌 거친 스테디셀러
음악감독 박칼린, 벨마로 변신
“안무 소화하는 게 가장 힘들어”
허름해 보이는 외관과 달리 아늑한 내부. 그 한가운데에는 간이무대가 설치돼 있었다. 연습 공연이 시작되고, 가장 먼저 박칼린이 모습을 드러냈다. 품이 낙낙한 블라우스와 편안한 재질의 스커트 차림이었다. 당당한 자태로 계단을 걸어 내려온 그는 매혹적인 음색으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컴 온 베이비. 함께 즐겨봐. 올 댓 재즈∼” 뮤지컬에 조예가 깊지 않은 이들에게도 익숙할 법한 멜로디. 첫 소절을 듣는 순간 실감했다. 쇼뮤지컬의 정석 ‘시카고’가 돌아왔다. 주역들과 10여명의 앙상블은 이미 완벽한 합을 이룬 듯했다. 개막을 10여일 앞둔 11일 서울 종로구 연지원 연습실을 찾았다.
무대 조명 의상 음향, 어느 것 하나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상황이었다. 기댈 거라곤 소규모로 꾸려진 오케스트라의 반주뿐. 나머지는 전부 배우들이 채웠다. 날것 그대로의 노래와 파워풀한 춤, 능수능란한 연기가 순식간에 공기를 휘어잡았다. 그 열기는 실제 공연을 방불케 했다.
‘시카고’는 1996년부터 22년간 미국 브로드웨이에서 꾸준히 사랑받아 온 스테디셀러 뮤지컬이다. 1920년대 미국 시카고를 배경으로 남편과 동생을 죽여 교도소에 들어온 배우 벨마 켈리와 나이트클럽에서 만난 불륜남을 살해한 죄로 수감된 코러스걸 록시 하트가 만나 벌어지는 이야기다.
국내에서는 2000년 초연 이후 18년간 13시즌을 거쳤다. 오는 22일부터 8월 5일까지 서울 디큐브아트센터에서 공연되는 이번 14번째 시즌에는 벨마 역에 최정원 박칼린, 록시 역에 아이비 김지우가 각각 더블 캐스팅됐다. 변호사 빌리 플린 역엔 남경주 안재욱, 간수장 마마 모튼 역엔 김영주 김경선이 합류했다.
가장 이목을 끄는 건 국내 초연부터 14년간 음악감독을 지낸 박칼린이 배우로 변신해 무대에 오른다는 점이다. 처음 제안을 받았을 땐 본인조차 당황스러웠단다. 하지만 흥미로운 도전이란 생각에 용기를 냈다. ‘낙하산 캐스팅’은 사절했다. 오디션에 임해 당당히 역할을 따냈다.
박칼린은 “스태프로 일하면서 오래 봐온 역할을 내가 직접 맡게 돼 영광스럽다”며 “(음악감독이 아닌) 벨마로서 작품에 접근하고, 대본을 다시 연구하는 과정이 재미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내가 평생 춤을 안 췄던 사람이지 않나. 안무를 소화하는 게 가장 힘들더라”고 웃었다.
초연부터 전 시즌을 이끌어 온 최정원이 박칼린과 번갈아가며 벨마를 연기한다. 최정원은 “어떤 배우들은 계속 새로운 작품에 출연하길 원하지만 (나는 다르다). ‘시카고’는 하면 할수록 어려우면서도 재미있다”고 했다. 이어 “이 작품은 마치 김치 같다. 매 시즌마다 조금씩 발효되고 있다. 이번에도 분명 새롭게 느끼실 것”이라고 소개했다.
네 시즌째 록시 역을 맡게 된 아이비는 “록시로는 대한민국에서 내가 가장 많은 무대를 섰기에 자신감이 있었다. 근데 미처 몰랐던 부분이 또 보이더라. 신선한 경험이었다”고 전했다. ‘시카고’에 처음 합류한 김지우는 “내가 이 연습실에 있다는 것이 아직도 현실감 없게 느껴질 때가 있다. 워낙 하고 싶었던 역할이기 때문”이라며 가슴 벅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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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
배우 박칼린의 춤·노래… 돌아온 ‘시카고’ 기대되는 이유
입력 2018-05-14 05: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