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김태용] 광주, 비, 얼굴들

입력 2018-05-14 05:05

이십년 가까이 공무원 생활을 하면서 소설을 쓰다가 몇 해 전 서울 생활을 접고 광주로 내려간 소설가 형이 있다. 곡성 면사무소에서 생활을 이어가는 동시에 부인과 함께 조선대학교 뒤편에 작은 책방을 냈다. ‘검은책방 흰책방’이란 이름으로 책도 팔고, 강연과 작가들의 낭독회를 하면서 지역 문화 공간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평일에는 면서기로, 주말에는 책방 주인으로 지내면서 탁자와 책꽂이를 만들고, 두부와 식혜도 직접 만들면서, 고단했던 지난 삶을 풍요롭게 가꾸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친한 작가들의 낭독회가 있어 주말에 함께 광주로 내려갔다. 서울도 비가, 광주도 비가 내리고 있었다.

광주에 내려갈 때마다 들르는 곳이 있는데 바로 광주극장이다. 1933년 설립되어 문화적으로 의미가 있는 공간인 동시에 유년 시절 극장에 드나들던 기억이 되살아나 완전히 매료되었다. 또 다른 소설가 형과 광주극장을 찾아 빗속을 걸어갔다. 광주극장에서 특유의 공기를 체험한 뒤 카페를 찾아 금남로 주변을 서성일 때 한 할머니가 우리를 불러 길을 물어보았다. 초췌한 모습에 입가에는 침 자국이 선명하게 묻어 있었다. “여기 어디서 광주사태 영화를 해준다고 하던디 어딘지 아시오?” 서울 사람이라 우리도 모르겠다고 하고 인사를 했다. 걸음을 옮기면서 뒤늦게 생각이나 돌아보았다. 아마도 구 도청 쪽에서 5·18 관련 행사가 열리고 있을 것이다. 그제야 전일빌딩이 눈에 들어왔다. 상처 가득한 거대한 회색 건물이 빗속에서 흔들리고 있었다.

책방으로 돌아와 낭독회를 듣는 사이 할머니는 지금 영화를 보고 있을까, 여전히 ‘광주사태’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그 시간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낭독회가 끝나고 각자의 일정 때문에 막차를 타야 하는 우리에게 형은 자신이 만든 두부로 두부김치와 비지찌개를 해줄 테니 하루만 더 있다 가라며 몹시 아쉬워했다. 서울로 올라가는 길, 형과 할머니의 검고 흰 얼굴과 목소리가 빗물과 함께 낡은 필름처럼 되감겼다.

김태용(소설가·서울예대 교수)

삽화=공희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