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발톱 드러내는 엘리엇, 흔들리지 않겠다는 현대차

입력 2018-05-12 05:00

엘리엇, 현대모비스 주총 앞 “지배구조 개선안 반대 투표”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관련 우리 정부에 7160억 배상 요구
정의선 “그건 그들의 방식 일회성 아닌 지속 추진” 단호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가 국내 대표 기업과 한국 정부를 상대로 전면적인 공세에 나섰다. 엘리엇은 오는 29일 현대모비스 주주총회에서 현대차그룹 지배구조 개편안에 반대표를 행사하겠다고 밝혔다. 또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에 한국 정부가 부적절하게 개입했다며 그 책임을 물어 7000억원대 손해배상을 요구했다.

이처럼 외국계 투기자본의 공세가 강화되는데도 정부는 최근 집중투표제 도입 등을 골자로 한 상법 개정안에 찬성 입장을 밝혀 국내 기업들의 경영권 방어가 더욱 어려워질 수 있다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엘리엇은 11일 보도자료를 통해 “현대차그룹의 개편안이 잘못된 전제에 기반하고 있다”며 “(주주총회에서) 반대표를 던질 것이며, 다른 주주들에게도 반대를 권고한다”고 밝혔다. 이어 “현대차그룹이 일부 자사주 매입·소각 계획을 발표했으나 형식적 조치에 불과하다”며 합리적 자본 관리와 주주환원 정책을 재차 요구했다.

현대차는 현대모비스의 분할 및 현대글로비스와의 합병을 통한 지배구조 개편을 추진하고 있다. 반면 엘리엇은 현대차와 현대모비스의 합병을 통해 지주사 체제로 전환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엘리엇이 보유한 현대차그룹 지분은 1%대에 불과하다. 결국 꼬리로 몸통을 흔들어 주가를 올린 뒤 시세 차익을 노리겠다는 전략이다.

현대모비스는 전체 주식의 약 9%인 2조원을 현대글로비스와의 분할합병 반대 현대주식매수청구권 행사 한도로 설정했다. 가능성은 낮지만 9% 이상의 주주들이 합병에 반대할 경우 지배구조 개편 자체가 무산될 수 있다. 엘리엇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당시에도 기관과 소액주주 등 합병 반대 세력을 규합한 바 있다.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은 최근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엘리엇은 그들의 사업 방식대로 하는 것”이라며 “흔들리지 않겠다”고 밝혔다. 엘리엇 공세를 정면돌파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한 것이다. 특히 정 부회장은 “모비스 성공 여부에 그룹의 미래가 달려 있다”며 “전장(전기장치) 분야 등에서 4∼5개 기업을 대상으로 전략적 인수·합병(M&A)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법무부는 지난달 13일 엘리엇이 제출한 투자자·국가소송(ISD) 중재의향서를 이날 공개했다. 엘리엇은 A4용지 4장 분량의 중재의향서에서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과 관련해 “한국 정부에 최소 6억7000만 달러(약 7160억원)로 추산되는 손실과 이자, 비용 등에 대해 배상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엘리엇 측은 피해액의 구체적 산정 기준을 제시하지는 않았다.

엘리엇은 합병 발표 직후인 2015년 6월 삼성물산 주식 7.12%를 보유 중이라고 공시했다. 삼성물산 1주를 제일모직 0.35주로 교환하는 합병 비율이 불법적이고 불공정하다며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해 왔다. 삼성물산의 최대주주였던 국민연금이 합병에 찬성하는 데 박근혜 전 대통령과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 등 한국 정부 관계자가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주장이다.

이에 정부는 엘리엇 측에 “피해액 산정 기준을 구체적으로 제시해 달라”는 의견을 전달하고, 소송에 본격적으로 대비하기 위해 국내 대형 로펌 7곳에 제안요청서를 보내는 등 로펌 선정 작업에도 착수했다. 중재의향서를 상대국에 접수하고 90일이 지나면 세계은행 산하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에 ISD를 제기할 수 있다.

정건희 신훈 기자 moderato@kmib.co.kr

그래픽=전진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