南 앞서 1968년 대표부 설치
北, 美 대북 심리전 비난… 민심 이완 등 단속 나서
북한이 북·미 정상회담 장소로 싱가포르를 수용한 것은 명분보다 실리를 취한 선택으로 풀이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평양을 찾는다면 체제 선전 효과가 상당하지만 현실적 어려움이 적지 않아 결국 포기했다. 싱가포르는 김씨 일가 사람들이 병 치료 등의 목적으로 찾는 등 북한에도 친숙한 곳이다.
북한은 1968년 1월 싱가포르에 통상대표부를 설치하면서 외교 관계를 수립했다. 싱가포르가 65년 말레이시아로부터 독립한 지 3년 만이다. 북한의 통상대표부 설치는 남한(70년 11월)보다도 3년 가까이 앞서 이뤄졌다. 북한은 69년 12월 통상대표부를 총영사관으로 승격한 데 이어 75년 11월에는 싱가포르와 수교를 맺고 대사관을 열었다.
싱가포르는 북한에도 편리한 장소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형 김정철은 2011년 에릭 클랩튼 공연을 보기 위해 싱가포르를 찾은 바 있다. 2012년에는 김 위원장의 고모 김경희가 당뇨병 치료차 방문했다. 지난해 피살된 김 위원장의 이복형 김정남도 생전에 종종 싱가포르에서 목격됐다.
2015년 이용호 당시 외무성 부상과 스티븐 보즈워스 전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 간 북·미 접촉도 싱가포르에서 이뤄졌다. 지난달 초에는 최희철 외무성 부상을 단장으로 하는 북한 대표단이 일주일간 싱가포르를 방문해 북·미 정상회담을 위한 사전답사를 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다만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가 극심해지면서 양측의 교류는 한풀 꺾인 상태다. 싱가포르는 북한의 5차 핵실험 직후인 2016년 10월 북한의 비자 면제국 지위를 박탈했다. 지난해 8월 싱가포르 기업 2곳이 북·러 간 불법 석유 거래를 중계하다 적발돼 미 행정부의 제재 명단에 오르기도 했다. 싱가포르는 지난해 11월 대북 교역 전면 중단 조치를 내렸다. 올해 들어서는 북한 출신 노동자의 자국 내 노동허가를 모두 취소했다.
북한은 북·미 정상회담이 확정된 이후에도 구체적인 장소와 일정을 주민들에게 공개하지 않고 있다. 최고지도자의 움직임을 사전에 공개하지 않는 북한 매체의 관행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회담 직전까지는 관련 언급을 자제하다가 회담 결과가 나온 직후 대대적으로 보도할 것으로 예상된다.
대신 북한 매체는 미국의 대북 심리전을 비난하며 주민 단속에 나섰다. 미국에 체제 보장을 압박하는 동시에 대화 국면에서 민심이 이완되지 않도록 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11일 논평에서 “미국이 대조선(대북) 정탐활동을 위한 자금을 대폭 늘리고 전자매체와 라디오 등을 통해 우리를 겨냥한 사상 문화적 침투 책동을 더욱 확대하려고 획책하고 있다”면서 “견결한 사회주의 수호정신을 지니고 거창한 변혁의 역사를 창조해 나가는 우리 인민의 신념과 의지는 그 무엇으로써도 꺾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조성은 기자 jse130801@kmib.co.kr
싱가포르 ‘김씨 일가에 친숙한 곳’… 美 접촉 장소로 종종 이용
입력 2018-05-11 18:24 수정 2018-05-11 2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