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식품부, 1월 “무조건 착용” 발표했다 한 달 만에 재검토
일부선 이미 시행으로 알고 항의하며 견주와 주먹다짐
다툼 잦아지자 한 아파트는 자체 의무화 규정 만들기도
김영열(74)씨는 최근 서울 동작구의 한 공원에 운동하러 나갔다가 무릎 인대가 파열됐다. 발단은 공원에 등장한 대형견이었다. 좁은 산책로에 자신의 허벅지까지 오는 큰 개가 등장하자 그는 견주 부부에게 “입마개를 하고 다니시라”고 요구했다. 견주는 “우리 개는 순해서 물지 않는다. 시비 걸지 말라”고 대꾸했다. 몇 번 고성을 주고받다 화가 난 견주가 김씨를 넘어뜨리고 때렸다.
김씨는 11일 “경찰이 골든리트리버는 맹견이 아니라 입마개를 의무 착용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더라”며 “송아지만한 개가 입마개 없이 다니는 게 말이 되느냐”고 울분을 터뜨렸다.
정부의 오락가락 반려견 정책에 견주와 비견주 간 갈등이 커지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지난 1월 반려견 안전관리 대책을 발표하면서 몸높이 40㎝ 이상의 대형견에겐 입마개 착용을 의무화하고 목줄 길이도 2m 이내로 제한하겠다고 했다. 규정위반 사실을 신고하면 포상금을 주는 ‘개파라치’ 제도도 시행키로 했다.
한 달 만에 정부는 대책을 전면 재검토한다고 선언했다. 반려인과 동물보호단체의 거센 반대에 부딪혔기 때문이다. 태스크포스(TF)까지 구성했지만 아직도 이렇다 할 결론을 내지 못한 상태다.
대책이 오락가락하는 동안 시민들은 혼란에 빠졌다. 래브라도 리트리버 2마리를 키우는 김근주(60)씨는 “대책 발표 후 개를 데리고 나가면 왜 입마개를 씌우지 않느냐며 욕을 해오는 사람이 늘었다”며 “즉흥적이고 무책임한 정책 때문에 산책도 못할 정도로 두려움에 떨고 있다”고 털어놨다.
공공장소에서는 관련 신고도 늘었다. 반포한강공원의 한 공공안전관은 “입마개 의무화 대책이 발표된 이후부터는 주말이 되면 하루에도 몇 건씩 신고가 떨어진다”며 “일반인들은 어느 정도 크기 이상의 개면 입마개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더라”고 했다. 하지만 현행법상 맹견으로 분류된 품종이 아니면 개가 아무리 커도 입마개 착용을 강요할 수 없다. 그는 “단속을 나가도 견주에게 ‘신고가 들어왔으니 주의해 달라’고만 말한다”고 털어놨다.
전남 여수시의 한 아파트는 아예 자체적으로 입마개 의무화 규정을 세웠다. 최근 엘리베이터에 ‘다른 입주민의 안전을 위해 산책 시에는 입마개·목줄 착용 필수’라는 공지문을 붙이고 권고·경고를 2번 받고도 시정하지 않으면 임대차 계약 해지를 요청하기로 했다. 대형견을 키우는 주민 김현정(32)씨는 “개를 데리고 엘리베이터를 탔다가 다른 주민에게 욕설을 들은 적이 있다”며 “그 후로 저런 공지문이 붙었다”고 했다.
신속한 결정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높다.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는 입마개 관련 청원만 200여건 올라와 있다. 김모(31)씨는 “입마개를 하지 않은 대형견을 볼 때마다 놀라지만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지나간다”며 “견주나 비견주나 지금 상황에서 불안한 건 매한가지”라고 했다.
이재연 방극렬 기자jaylee@kmib.co.kr
“송아지만한 개가…” 주먹다짐 부른 ‘입마개’ 정책 혼선
입력 2018-05-12 05: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