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가 되기로 마음 먹고 대학 가고 임용시험 치고
박사 학위 받는 모든 것이 장애 극복 과정이자 도전
시각장애인에게 필요한 편의시설 확충이 새 목표
한창 꿈 많던 20대 시절 그는 갑자기 앞을 볼 수 없게 됐다. 무엇을 해야 할지,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로부터 20여년이 지난 지금 그는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사가 돼 있다. 일반교과의 영어교사가 돼 비장애인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이우호(45) 교사를 지난 11일 대구시 남구 대명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힘든 시절을 어떻게 극복했느냐”고 조심스레 묻자 그는 “극복한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어요. 내 상황을 인정했을 뿐이죠. 인정하니 다시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라고 말했다.
장애를 인정하니 교사 꿈 생겨
이우호 교사는 시각장애 1급이다. 20대 초반 군 입대를 앞두고 신체검사를 받았는데 ‘망막색소변성증’이라는 진단을 처음 받았다. 망막에 이상이 생겨 결국 실명에 이르게 되는 무서운 병이다. 진단을 받은 후 병세는 급속히 악화돼 24세 때에는 앞을 전혀 볼 수 없게 됐다.
“망막색소변성증 판정을 받고 하루하루 시력이 나빠지면서 초조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완전히 시력을 잃고 2∼3년을 실의에 빠져 지내다가 시각장애인임을 인정하기로 했죠.”
스스로가 장애인임을 인정하게 되기까지는 쉽지 않았지만 그는 1999년 시각장애인 교육기관인 대구광명학교에 들어갔다. 점자를 배우면서 살아가는데 필요한 재활훈련도 받기 시작했다. 교사의 꿈도 이때 생겼다.
“따뜻하게 돌봐준 담임선생님이 고마웠고 그를 닮고 싶었습니다. 또 안마와 마사지, 지압, 침구실습 등의 이료교과를 담당하는 네 분의 시각장애인 선생님들께 배우면서 나도 무엇인가를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이 생겼어요.”
교사가 되기로 결심했지만 가는 길은 막막했고, 너무도 멀었다. 일단 사범대에 입학해야 했다. 이 교사는 자신과 같은 장애인을 가르치는 특수교육 교사 과정을 선택할 수도 있었지만 더 어려운 영어교사 과정을 선택했다.
“당연히 힘든 과정이 될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냥 도전하기로 했습니다. 예전부터 관심이 있던 영어교과를 꼭 해보고 싶었어요.”
꿈을 찾아가는 길은 쉽지 않다
그는 늦은 나이에 잠을 줄여가며 다시 대입을 준비했고 2001년 장애인 편의 시설과 교육 과정이 잘 갖춰진 대구대학교 사범대학 영어교육과에 입학했다. 꿈을 이루기 위한 첫 단추를 끼웠다는 안도감도 잠시였다. 20대 후반의 나이에 어린 비장애인 학우들과 함께 공부하는 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다른 학교보다 대구대가 장애인들이 공부하기 좋은 환경을 갖추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공부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어요. 다른 학생들이 1시간이면 공부할 수 있는 분량도 저는 3시간 이상 걸렸습니다.”
그는 앞을 볼 수 없기 때문에 강의를 녹음하거나 자신이 사용할 수 있는 학습 자료를 따로 만들어야 했다. 시간이 많이 걸리는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나이 어린 비장애인 학우들이 많이 도와줬다. 교재 녹음도 대신해주고 공부에 필요한 자료나 정보도 많이 제공해줬다고 한다.
넉넉하지 않은 가정 형편도 그를 더욱 힘들게 했다. 따라가기 힘든 학과 공부와 대학원 진학 문제, 특히 가정 형편 때문에 그는 휴학을 2번이나 해야 했다. 쉬는 기간에는 학비 등을 마련하려고 고생도 많이 했다. 그는 우여곡절 끝에 2006년 가을이 돼서야 대학을 졸업할 수 있었다.
멈출 수 없는 ‘도전 DNA’
힘들게 대학을 졸업했지만 도전은 계속됐다. 2007년 대구대 교육대학원에 진학했고 2010년에 석사과정도 졸업했다. 석사과정을 마치고 2010년 자신이 장애인으로서 희망을 찾고 꿈을 갖게 됐던 대구광명학교에서 기간제 교사로 일하기 시작했다. 교사이자 임용고시 수험생이며 또 박사과정을 다니는 학생으로서 1인3역을 하며 주경야독하는 생활을 감수해야 했다.
“학교에 들어간 지 얼마 안 돼 진학계를 맡았는데 그해 진학을 꿈꾸는 학생들이 많았어요. 장애학생들의 진학과 관련된 일을 하다 보니 상담과 보충수업 등 많은 것을 신경 써야 했죠. 아침 일찍 출근해 저녁 늦게 퇴근하는 생활을 해야 했습니다.”
그는 교사인 동시에 수험생이었다. 더 좋은 선생님이 돼야겠다는 생각에 박사과정에 도전했고 동시에 일반교과 교사 임용시험도 준비해야 했다.
“지금은 추억이지만 그때는 너무 힘들었어요. 하루에 5시간 이상 자보는 것이 소원이었죠. 포기하고 싶은 적도 많았지만 ‘지금 포기하면 다시는 못할 것 같다. 한번만 더 해보자’는 생각으로 버텼습니다.”
그는 5번의 도전 끝에 2013년 드디어 꿈에 그리던 교사가 됐다. 1급 시각장애인이 일반교과 교사가 된 것은 대구시에서 그가 처음이었다. 교편을 잡게 됐지만 도전은 이어졌다. 임용시험 합격 당시 박사과정을 밟고 있었는데 교사업무를 하며 병행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결국 박사 논문 준비를 미뤄둘 수밖에 없었다. 이 교사는 “교사로서의 일을 소홀히 할 수 없었다”며 “수업 준비에 남들보다 몇 배 이상의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기에 박사 논문을 준비할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이 교사는 학업을 다하지 못한 것이 늘 마음에 걸렸다. 교사로서 일이 어느 정도 익숙해지자 그는 다시 박사 논문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경북여고와 대구예담학교에서 영어교사로 일하면서 틈틈이 졸업 논문을 준비했고 지난해 드디어 박사 학위를 받게 됐다. 그가 불굴의 의지로 장애를 극복한 과정이 귀감이 돼 학위를 받을 때 총장 공로상도 함께 받았다.
“나의 도전은 현재진행형”
이 교사는 장애를 인정하고 극복하는 과정이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큰 도전이었다고 털어놨다.
“지금 생각해보면 교사가 되기로 마음을 먹고, 대학에 들어가고, 임용시험을 치르고, 박사학위를 받은 모든 과정이 장애를 극복하기 위한 과정이자 도전이었다고 생각됩니다. 너무 힘들어 포기하고 싶을 때가 많았지만 포기할 수 없었어요. 여기서 멈추면 다시는 도전할 수 없을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이런 마음으로 지내려고 노력해요.”
이 교사의 도전은 멈추지 않았다. 그는 시각장애인에게 필요한 편의시설 확충을 위한 연구를 준비 중이다. 국내 상황과 선진국 상황 등을 비교·연구해 더 나은 시각장애인 편의시설을 구축하고 싶다는 목표가 생겼다.
“아직도 좋은 선생님이 되기 위해 도전하고 있는 중입니다. 학생들이 시각장애인을 어려워하지 않도록 알려주는 것 역시 도전입니다. 요즘에는 우리나라 시각장애인들이 좀 더 편하게 외부 활동을 할 수 있는 시설 인프라 구축에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새로 도전할 것이 생긴 것이죠.”
이 교사는 삶이 힘들고 고통스러운 사람들에게 ‘Never give up!’ ‘One more step!’이라는 말을 꼭 해주고 싶다고 했다.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하면 길이 보입니다. 주위에서 도움을 주는 사람도 나타납니다. 빨리 갈 필요도 없어요. 한 발씩만 앞으로 내디디면 됩니다. 천천히 가면 되죠.”
카페에서 기자와 인터뷰를 하는 도중 여학생 2명이 “선생님!”이라고 외치며 이 교사 쪽으로 다가왔다. 이 교사가 경북여고에 근무할 당시 그에게 배웠던 제자들로 올해 대학생이 됐다고 했다. 이 교사와 제자들은 반갑게 인사하고 그동안의 안부를 물었다.
학생들이 돌아간 후 다시 기자 앞에 앉은 이 교사는 정성을 쏟았을 때 학생들이 달라지는 모습을 보는 것이 가장 즐겁다고 했다. 또 시각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향상되는 것도 보람이라고 덧붙였다. 인터뷰가 끝날 때까지 이 교사의 넉넉한 미소는 변함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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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글·사진 최일영 기자 mc102@kmib.co.kr
[도전 DNA 되살리자] “장애 인정… 포기 않고 열심히 가다보면 길이 보여”
입력 2018-05-14 05: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