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온의 소리] 사랑의 기쁨이 회복되는 가정

입력 2018-05-11 00:01

가정에 대한 설교를 준비하기 위해 최근 출판된 책 7권을 살펴봤다. 놀랍게도 대부분의 책은 행복한 가정에 대한 내용보다 역기능 가정의 문제점을 다루고 있었다. 부부 사이의 갈등, 부모로부터 상처받거나 버림받은 아이들, 노령화로 인한 가족 문제 등이었다. 우리 사회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 같아 씁쓸했다.

한국 사회는 결혼을 해서 가정을 이뤄가기엔 힘든 여건이 너무 많다. 청년들은 결혼비용 등 경제적인 문제로 결혼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 30, 40대 직장인은 일상화된 야근으로 가족들 얼굴 보기도 어렵다. 맞벌이 부모 밑에서 아이들은 초등학생만 돼도 학원에서 보내는 시간이 집에 있는 시간 못지않게 길어진다. 워킹맘의 70% 이상이 조부모에게 자녀를 맡기고 있다. 이로 인해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손주 육아라는 ‘노동’에 시달린다.

2016년 교황 프란치스코는 ‘사랑의 기쁨(Amoris Laetitia)’이라는 교황 권고를 발표했다. 이 권고문은 “가정이 체험하는 사랑의 기쁨은 또한 교회의 기쁨”이라는 의미 있는 문구로 시작된다. 가정은 교회뿐 아니라 사회의 근간이다. 이 점을 감안한다면 우리 사회가 여러모로 암울한 것은 가정에서 체험하는 사랑의 기쁨이 현격히 줄었기 때문이라고 봐도 크게 틀리지 않을 것 같다.

어떻게 하면 가정이 주는 사랑의 기쁨을 회복할 수 있을까.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는 결혼과 가정의 개혁이 교회와 사회를 개혁하는 데 중요한 근간이 된다고 믿었다. 결혼과 가정생활의 단맛과 쓴맛을 두루 경험한 루터는 가정에 대한 생각을 많이 남겼다.

우선 루터는 결혼과 가정에 대해 설교하는 일이 두렵다고 말하곤 했다. 몇 마디 권고로 가정의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았기 때문이다. 루터는 결혼과 가정이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라 믿으면서도 신비로운 영역으로 여겼다. 좋을 때는 더할 나위 없이 좋지만 문제가 생기면 엄청난 고통이 발생하는 것 자체를 신비하게 봤다.

결혼과 가정에 대한 루터의 생각에서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세 단어는 은사와 사랑, 그리고 헌신이었다. 무엇보다 루터는 결혼은 하나님이 주는 은사라고 봤다.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의미다. 그는 배우자와 자식을 주신 원천이 하나님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가족을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프레임을 통해 바라봐야만 우리는 후회하거나 원망하지 않는다고도 말했다.

또한 루터는 결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 세상에서 부부 사이에 존재하는 마음의 일치보다 더 아름다운 것은 없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결혼과 가정은 조건 없이 사랑하는 이들이 만들어 가는 공동체라고 강조했다. 한 편지에서 루터는 자신의 아내에 대해 “나의 친절하고 자상한 주인이자 카타리나 폰 보라 여사이며 여자 루터 박사님”이라고 표현한 일도 있다. 루터는 아내를 이렇게 칭송할 정도로 사랑했던 걸로 유명했다. 그리스도인은 이웃을 자기 몸처럼 사랑해야 하는데 그중에서 배우자는 가장 가까운 이웃이라고 종종 말하기도 했다.

끝으로 루터는 가족들의 자발적인 헌신이야말로 가정을 지탱하는 기둥이라고 밝혔다. 루터는 매일 성경을 강의했고 거의 매주 설교했다. 다양한 신학 주제에 대해 책과 논문을 쉼 없이 써내기도 했다. 하루에 40통이나 되는 편지를 쓴 적도 많았다. 그의 아내도 마찬가지였다. 친자식과 친척의 아이들까지 모두 12명이나 되는 아이를 길러야 했다. 또, 많은 피난민을 돌봐야 했기 때문에 루터의 집엔 엄청난 일거리가 쌓여 있었다. 하지만 루터도, 루터의 아내도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묵묵히 해냈다. 그것은 상호 신뢰와 헌신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루터는 “가정에서 사랑의 기쁨이 이뤄지려면 믿음에 뿌리를 내린 인내가 요구된다”고 말했다. 그 인내는 소망의 열매를 낳는다. 그리고 인내의 여정 끝에는 사랑의 기쁨이라는 큰 열매가 있는 것이다. 결혼과 가정에 대한 루터의 관점은 2018년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여전히 필요하고 적절하다.

우병훈 (고신대 신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