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의 경쾌한 음악이 어우러지면서 도심 속 실외 농구 코트의 열기는 한층 더 뜨겁게 달아올랐다. 경기 속도는 기존에 다섯 명이 하는 농구보다 빨라서 한눈을 파는 순간 수시로 나오는 득점 장면을 놓치기 일쑤였다. 선수들은 기존 농구코트의 절반쯤 되는 좁은 공간에서 공 하나를 두고 이종격투기를 연상케 하는 거친 몸싸움을 벌였다. 가족 친구 연인 단위로 삼삼오오 몰려든 관중들은 농구와 음악, 먹거리를 한꺼번에 즐기며 일상에서의 스트레스를 날리고 건강한 웃음을 터뜨렸다. 지난 5일 경기도 고양시 스타필드 내 스포츠몬스터 루프톱에 위치한 코트M에서 ‘KOREA 3×3 프리미어리그’가 개막했다. 올해 처음 출범한 국내 최초의 3×3 농구 프로리그다.
3×3 농구는 1990년대 ‘농구대잔치 붐’에 힘입어 2000년대 초반까지 ‘길거리 농구’로 명성을 떨쳤다. 이후 각종 볼거리가 봇물처럼 쏟아져 나오면서 외면당했지만 2020 도쿄올림픽과 오는 8월 열리는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정식종목 채택을 계기로 재기의 발판을 마련했다. 지난해 7월 창설된 한국3대3농구연맹은 약 9개월의 준비 과정을 거쳐 프로리그 출범에 성공했다.
올 시즌 대회는 오는 9월까지 정규리그 9라운드, 플레이오프 1라운드로 진행되며 팀 상금과 선수 수당이 포함된 총 상금 1억원이 걸려 있다. 격주마다 라운드가 열리는 일정이며, 플레이오프에서는 상위 3개 팀과 와일드카드 1개 팀이 리그 초대 챔피언 자리를 놓고 격돌한다. 팀 데상트, ISE BALLERS, PEC, CLA CHAMPIONS, 인펄스 등 5개 국내 팀과 일본리그 소속 교류팀인 스탬피드(STAMPEDE)가 참가했다. 6개 팀은 라운드마다 A, B조로 나뉘어 예선을 치른다. 예선 각 조 1, 2위 팀은 토너먼트로 맞붙어 라운드 우승팀을 가린다.
리그 순위는 승점제를 통해 가린다. 라운드별 우승팀이 4점, 준우승팀은 3점을 가져가고, 3∼4위는 2점, 5∼6위가 1점을 얻는 방식이다. 경기시간 10분 내 21점을 선취해 끝내는 ‘셧아웃’ 승리를 거두는 팀은 경기별 승점 1점을 추가로 갖는다. 일본 교류팀 스탬피드가 첫 라운드 우승을 차지해 승점 5점으로 선두에 올랐다. 지난달 국제농구연맹(FIBA) 3×3 아시아컵에 한국 국가대표로 출전했던 박민수 방덕원 김민섭 등이 주축을 이룬 ISE(승점 4점)는 2위에 이름을 올렸다.
개막 라운드 경기는 관중과 대회 관계자들로부터 일단 합격점을 받았다. 3×3 농구는 득점 이후 인바운드(코트 밖에서 안으로 패스하는 것) 없이 곧바로 공수 교대가 이뤄지고, 공격제한시간은 기존 농구의 절반인 12초여서 빠르고 박진감 넘치는 경기가 펼쳐졌다. ‘셧아웃’이 적용되는 덕분에 이른바 ‘닥공(닥치고 공격) 농구’가 연출됐다. 점수를 크게 앞서고 있는 팀은 단순히 이기기 위해 시간을 끌지 않았고, 쉴 틈 없이 공격을 퍼부어 득점을 쌓는 것에 집중했다. 또 경기시간이 10분으로 짧아서 농구를 잘 모르는 관중들도 지루하지 않게 볼 수 있었다.
3×3 농구는 재미와 스포츠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현대 흐름에 부합하는 콘텐츠다. 연맹 관계자는 “경기시간이 짧아 손쉽게 휴대전화 영상 촬영과 SNS 공유가 가능하고, 도심 속 코트에서 경기가 열려 접근성이 좋다”며 “스포츠에 음악, 패션, 음식 등의 엔터테인먼트 요소가 결합돼 여성과 어린이 팬을 확보하기 유리하다는 장점도 있다”고 설명했다. 3×3 농구는 풋살, 비치발리볼, 7인제 럭비, 5인제 야구 등 시공간의 제약을 덜 받으면서 규칙이 간소화돼 직접 즐기기 쉬운 ‘미니멀 스포츠’의 형태도 띠고 있다.
이번 프로리그 개막과 더불어 8월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 나설 국가대표 선발전이 열리면서 3×3 농구의 인기는 한층 더 치솟을 전망이다. 대한민국농구협회는 오는 26∼27일 국가대표 선발전의 예선 격인 2018 3×3 코리아 투어 8차 대회를 연다. 다음 달 9∼10일에는 국가대표 최종 선발전을 개최한다. 김낙현(인천 전자랜드) 박인태(창원 LG) 안영준(서울 SK) 양홍석(부산 KT) 등 한국농구연맹(KBL) 소속 프로선수들도 참가해 아시안게임 티켓을 노린다.
▒ 한국3대3농구연맹 초대 회장 김도균 교수
“농구 붐 이끄는 리그로 성장했으면…”
“궁극적으로 ‘KOREA 3×3 농구 프리미어리그’가 1990년대처럼 한국농구 전체의 인기를 끌어올리는 견인차 역할을 하는 리그로 성장했으면 좋겠습니다.”
김도균(52·사진) 경희대 체육대학원 교수는 지난해 7월 한국3대3농구연맹의 초대 회장으로 취임했다. 국내 최초의 3×3 농구 프로리그 창설 작업을 주도했던 그는 지난 5일 프리미어리그가 개막하자 누구보다 감격스러워하는 눈치였다. 지난 9일 경기도 용인시 경희대 국제캠퍼스에서 만난 김 교수는 “3×3 농구가 한국 프로종목이 됐다는 사실 자체가 큰 이슈다. 3×3 농구가 활성화된 유럽이나 일본처럼 한국도 장기적으로는 경쟁력이 있다고 생각한다”며 리그의 발전을 기대했다.
알고 보면 김 교수는 미국 길거리에서나 행해질 법했던 3×3 농구를 한국에 이식한 장본인이다. 1994년 스포츠용품 브랜드인 나이키코리아에 재직하던 시절 마케팅의 일환으로 ‘3대 3 길거리농구대회’를 만든 것을 계기로 농구와 인연을 맺었다. 김 교수는 “당시 한국에 길거리 농구대회는 물론 이벤트 대행사도 없었다. 직접 점수판 제작부터 경기장 설계 및 운영, 무대 설치, 심판 교육 등을 도맡아 대회를 치렀다”며 “첫 대회 때 전국 5개 도시에서 3400여 팀이 참가했다. 불붙은 길거리 농구 열기는 2000년대 초반까지 이어졌다”고 설명했다.
그랬던 한국 농구의 인기는 어느 순간 사그라졌다. 김 교수는 “디지털 세상이 오면서 아이들의 놀이가 스포츠에서 게임으로 넘어갔다. 다양한 놀이 문화가 생기면서 기존 스포츠가 살아남으려면 참여와 재미를 키워드로 한 디지털 콘텐츠를 찾아내야 하는 시대가 왔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게임과 스포츠의 중간적인 형태를 갖춘 3×3 농구는 현대 트렌드에 부합하는 경쟁력 있는 종목”이라며 “프로리그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으면 리그와 선수, 스폰서 기업, 농구팬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성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 교수는 유럽과 일본의 프로리그 사례를 연구하며 성공 가능성을 봤다. 일본은 6개 팀으로 리그를 시작해 2년이 지난 뒤 26개 팀으로 늘었다. 유럽에는 3×3 농구리그에 엘리트 선수들이 참여하기 시작했다. 김 교수는 “아직 한국은 3×3 농구를 바라보는 시각이 전통적 스포츠보다는 게임에 가깝다. 리그가 활성화되고 안정적인 직업 보장이 이뤄지면 엘리트 선수들이 뛰어들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어 “프로리그가 한국 3×3 농구의 국제 경쟁력을 높이고, 농구 붐 조성에 기여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힘쓸 것”이라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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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박구인 기자 captain@kmib.co.kr
[And 엔터스포츠] 경쾌한 음악 울리자 ‘닥치고 공격’… ‘3×3 농구’ 리그 출범
입력 2018-05-11 05: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