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중앙지법 보직인사 투표하자” 현직 판사, 내부전산망서 주장

입력 2018-05-09 21:34 수정 2018-05-10 07:57
金 대법원장, 지법원장 때 ‘토론 인사’와 유사한 맥락

현직 판사가 전국 최대 법원인 서울중앙지법의 주요 보직 인사(人事)를 동료 판사들의 투표로 결정해야 한다는 주장을 9일 법원 내부 전산망(코트넷)에 실명으로 올렸다. 법원장이 전권을 쥐고 주요 보직을 임명하던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 평소 좋은 재판을 위해 노력해 판사들 사이에 신망이 두터운 판사가 핵심 보직에 임명돼야 한다는 취지다.

서울중앙지법 소속 남인수(44·사법연수원 32기) 판사는 코트넷에 올린 글에서 “서울중앙지법의 영장전담재판부 3곳과 형사합의부 13곳을 각 기수별 판사들이 직접 선발하는 ‘기수별 배심원단’ 제도를 제안한다”고 밝혔다. 연수원 시절부터 부장판사가 될 때까지 약 20년간 서로를 알고 지낸 동기들이 배심원단이 돼 투표를 하면 판사 뒷조사 논란을 피하면서 판사 개개인의 평판을 적절하게 반영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김명수 대법원장이 춘천지법원장 재임 시절에 법원 인사를 판사들의 토론으로 결정했던 이른바 ‘춘천 실험’과 유사한 맥락이다.

서울중앙지법은 올해부터 판사회의를 통해 선발된 법관들이 사무분담위원회를 구성해 영장전담·형사합의부 등의 주요 보직 인사를 결정했다. 법원장의 독점적 임명 관행을 탈피하려는 시도였다. 그러나 법원 내 모든 판사에 대한 객관적인 평판 정보가 없으면 위원회도 관행에 따라 수석부 배석판사나 기획·공보 등 행정 경력이 있는 판사를 중심으로 핵심 보직을 결정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남 판사의 지적이다.

남 판사는 “사무분담위원회가 설치돼 독립적 외관이 만들어졌다고 볼 수 있지만 전체 판사 인사 정보의 한계로 인재 풀이 협소하게 운영된다면 본질이 바뀌었다고 보기 어렵다”며 “동기 집단의 평판 정보를 활용하는 건 다면평가 내지 동료 평가 방식과 유사하다”고 설명했다.

서울중앙지법에는 20년차 이상 부장판사들이 다섯 기수에 걸쳐 100명 정도 근무하고 있다. 남 판사는 “소수의 위원들보다 100여명의 부장판사들이 다수의 법관을 선발하는 방법이 보편적인 재판 감각을 보다 잘 반영하는 사무분담 방법”이라며 “좋은 재판을 위해 치열하게 토론하고 자료를 찾는 성실한 법관은 사법행정에 별다른 관심이 없더라도 주변 법관들로부터 좋은 법관으로 평가받고 주요 보직에 선발될 것”이라고 했다.








양민철 기자 list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