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상 중심으로 '공채' 추적
"문학 공모전도 여러 한계 노출
독자들 다양한 리뷰 공유해도
참신한 작가·작품 발굴될 것"
‘428대 1’ ‘100대 1’ ‘41대 1’…. 각각 지난해 말부터 최근까지의 A문학상 당선, B대기업 입사, 9급 공무원 채용 경쟁률이다. ‘공모전의 제왕’으로 불리는 소설가 장강명(43)이 문학상을 중심으로 한국 사회의 온갖 시험 제도를 비판적으로 분석한 르포 ‘당선, 합격, 계급’(민음사·표지)을 냈다. 그를 9일 서울 여의도 국민일보 사옥에서 만났다.
동아일보 기자 출신인 그는 2011년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하면서 등단했다. 이후 오늘의작가상 등 4개 대형 문학상을 연달아 수상했다. 얼핏 문학상 최대 수혜자로 보이는 그가 왜 하필 이런 르포를 썼을까. “처음엔 문학 지망생에게 제대로 된 조언을 해야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다 문학 공모가 소설가를 채용하는 일종의 공채라는 데까지 생각이 미쳤고 취재 범위가 넓어졌다.”
실제 그는 문학상을 다루는 데 그치지 않고 대기업 직무적성검사 고사장과 로스쿨 재학생들의 집회 현장을 쫓아다니며 이 사회에서 ‘공채’가 무엇인지 추적했다. 70여명을 심층 인터뷰했고 수백 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기획에서 출간까지 무려 3년. 부제는 ‘문학상과 공채는 어떻게 좌절의 시스템이 되었나’가 됐다.
“대규모 공채로 직원을 뽑는 나라는 전 세계적으로 한국과 일본 정도뿐이다. 선진국에선 수시채용이 일반적이다. 정부가 9급 공무원을 뽑으면서 ‘쌈’이 바늘 몇 개인지 묻는다. 그게 직무에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공채는 효율적인 면이 있지만 획일적인 시험은 다양성을 말살하고 실패자를 양산한다고 지적한다.
그는 1995년 본격적으로 시작된 문학 공모전도 성과를 냈지만 이젠 여러 한계를 노출하고 있다고 봤다. “근래 주요 문학상이 수상자 배출을 못하고, 수상자도 차기작을 못 내는 경우가 허다하다. 독자들은 좋은 한국 장편소설을 찾기 어렵다고 한다. 새롭고 다양한 방식으로 작가들이 나와야 할 때다.”
그렇다고 그가 획기적인 등단 방식이나 채용 방식을 제안하는 건 아니다. “등단 제도를 없앤다고 문학권력이 사라지는 건 아닐 것이다. 독자들이 문학상 수상 작가의 책을 찾는 것은 책에 대한 정보를 얻기 어렵기 때문이다. 독자가 책에 대한 다양한 리뷰를 공유하기만 해도 참신한 작가와 작품이 지금보다 많이 발굴될 것이다.”
그는 이 제안을 다른 분야에도 적용한다. “구직자가 대기업에 몰리는 건 좋은 중소기업에 대한 정보가 없어서다. 정부가 좋은 중소기업 정보를 충분히 공개하기만 해도 취업난이 완화될 수 있다.” 문학상이 주요 소재이지만 그는 온갖 시험 사례와 그 의미에 대해 다룬다. 생생하고 재미있어서 책장이 술술 넘어간다.
‘한 사회가 누군가에게 기회를 준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어떻게 자격을 주는 것이 바람직한가’라는 질문도 끊임없이 하게 된다. 그러고 보면 그가 발표한 소설의 문제 제기 방식과 상당히 닮아 있다. 국정원 댓글 사건을 다룬 ‘댓글부대’, 혐한 정서를 그린 ‘한국이 싫어서’, 통일 문제를 담은 ‘우리의 소원은 전쟁’ 등도 사회성 짙은 작품이지 않는가.
“지금 독자들은 사회 부조리를 다룬 서사 중심의 소설을 원하는 것 같다. 정세랑 이혁진 임성순 등이 여기에 응답하는 작가들 같다. 문학이 바다라면 그런 작품이 큰 파도를 이루며 서서히 올라오는 느낌이다.” 본인이 그 파도를 일으킨 건 아닌지 물었다. 그는 “그럴 리가요”라며 멋쩍게 웃었다.
그는 문학이 유독가스를 감지하는 ‘탄광의 카나리아’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조지 오웰이 ‘1984’를 썼기 때문에 우리가 감시 사회에 대한 경각심을 가질 수 있었던 것 같다. 소설가는 어떤 위기가 퍼질 때 그 위기를 문학적 감수성으로 감지하고 그걸 동시대인에게 보여줘야 한다. 내가 추구하는 문학은 그 위기를 보여주면서 세계에 의미 있는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카나리아가 되길 원하는 그가 앞으로 우리에게 어떤 질문을 던질지 궁금하다.
강주화 기자 rula@kmib.co.kr
‘공채비판’ 르포 장강명 “획일적인 채용시험이 실패자 양산”
입력 2018-05-11 05:01 수정 2018-05-11 12: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