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곳 중 23곳은 동일 수준 유지
임피 도입 기업이 37.6% 최다, 이전보다 평균 10% 고용 확대… 성과연봉·호봉제 개편도 효과
경영성과·재정적 여유가 요인
쉽게 못 바꾸는 이유는 ‘돈’ 임피 지원금 같은 재정정책 절실
근속 연수가 쌓일수록 임금이 오르는 전통적 임금체계인 호봉제를 개편한 기업 2곳 중 1곳이 고용을 늘린 것으로 나타났다. 임금피크제나 직무급제 등 새 임금체계 도입 이후 경영 성과가 개선된 영향이 컸다. 고용을 유발하는 임금체계 개편을 위해 임금피크제 지원금과 같은 정책적 지원 확대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국민일보가 9일 입수한 한국노동연구원의 ‘임금체계 개편 유형별 고용 효과에 대한 실증 연구’ 보고서는 기업 50곳에 대한 분석 결과를 담고 있다. 해당 기업은 2014∼2015년에 임금체계 개편을 단행한 곳이다. 유형별로는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기업이 37.6%로 가장 많았다. 이어 성과연봉제 도입(27.0%), 호봉제 개편(20.0%), 직무급제 도입(15.4%) 순으로 집계됐다.
개편 효과를 살펴보기 위해 도입 당시 경영 상황과 지난해 상황을 비교 분석했더니 절반인 25곳(50.0%)이 개편 전보다 고용을 더 늘렸다. 나머지 가운데 23곳(46.0%)은 비슷한 수준의 고용을 유지했으며, 개편 이후 고용을 줄인 곳은 2곳(4.0%)에 불과했다. 특히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기업은 이전과 비교해 평균 10.0% 정도 고용을 늘린 것으로 나타났다.
기업들이 고용을 늘릴 수 있었던 첫 번째 요인으로는 성과가 꼽힌다. 한국기업데이터에 등록된 재무 자료를 분석해 본 결과 조사 대상 50개 기업 중 19곳(38.0%)의 경영 성과가 개편 전보다 나아졌다. 28곳(56.0%)은 비슷한 수준의 경영 성과를 유지했으며, 악화된 곳은 3곳(6.0%)에 그쳤다.
인사 측면에서 여력이 생긴 점도 고용유발 효과를 낳았다.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기업의 경우 고임금 근로자에게 돌아가던 연봉을 감액하면서 재정적인 여유가 생겼다. 이를 신규 사원을 뽑는 재원으로 활용한 것이다. 보고서는 향후 지급해야 할 임금의 예측 가능성이 높아진 점도 신규 고용을 불러온 요인 중 하나라고 분석했다. 성과연봉제를 도입한 S사의 경우 성과평가체계와 연봉체계를 연동하면서 임금 불확실성이 사라진 점을 고용이 늘어난 계기라고 밝혔다.
이처럼 가시적 성과를 낼 수 있는데도 대다수 기업들이 섣불리 임금체계를 바꾸지 못하는 이유는 ‘돈’이었다. 임금 개편 과정에서 발생한 장애요인을 물어본 결과 인건비 상승(29.4%)이라는 응답의 비중이 가장 컸다. 2015년에 호봉제를 폐지하고 업무평가 등에 따라 임금을 정하는 직무급제를 도입한 D사는 도입 당시 전체 임금 인상률을 평년(1.5%)보다 올렸다. 총액으로는 4% 정도 인건비가 증가했다. 개별 직무에 맞는 연봉을 도입하면서 기존 연봉보다 낮게 받는 경우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조치였다.
보고서는 임금체계 개편이 기업에서 보편화하고 고용 증대로 이어지려면 정책적 지원이 중요하다고 봤다. 특히 올해로 끝나는 임금피크제 지원금을 계속 유지하는 게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임금피크제 지원금은 제도 도입으로 임금이 10% 이상 삭감되면 근로자 1인당 연간 최대 1080만원까지 정부가 지원하는 제도다.
이성희 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임금체계 개편은 노사 합의로 추진될 경우 효과가 가장 크기 때문에 노사를 대상으로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이 효과적”이라며 “중소기업을 위해 대기업의 성공 사례를 모델화하는 정책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세종=신준섭 기자 sman321@kmib.co.kr
그래픽=전진이 기자
[단독] 임금체계 바꾼 기업 절반, 고용 늘렸다
입력 2018-05-09 18:40 수정 2018-05-09 22: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