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협정 탈퇴 공식 선언… 이란에 대한 경제 제재 재개 獨·佛·英 등 당사국 유감 성명
EU “협정 유지” 입장이지만 이란 반발… 파기 가능성 높아
미국이 이란 핵 협정 탈퇴를 공식 선언하면서 국제사회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미국이 대이란 제재를 본격화할 경우 이란 역시 협정을 파기할 가능성이 높고, 결국 다시 핵 개발에 나서면서 미국과 충돌로 치달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8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란의 핵 협정은 거짓이었다는 분명한 증거가 있다. 이란은 핵무기 프로그램을 계속 추진해 왔다”면서 협정 탈퇴를 공식 선언했다.
핵 협정은 2015년 7월 이란이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중국 러시아 6개국과 합의한 것으로 핵 개발 프로그램을 제한하는 대신 이란에 가해졌던 각종 제재 조치를 해제한다는 것이 골자다. 협정에 따르면 이란은 핵무기 개발이 의심되는 시설에 대해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을 허용하고, 원심분리기를 향후 10년 동안 3분의 1 수준으로 감축해야 한다. 또 2030년까지 일정 농도(3.67%) 이상으로 우라늄을 농축하지 말아야 하며 우라늄 농축을 목적으로 신규 시설을 건설해서도 안 된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초부터 핵 협정을 “최악의 협상”이라고 비난하며 탈퇴를 예고했다. 대이란 강경파인 마이크 폼페이오와 존 볼턴을 각각 국무장관과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으로 지명한 것도 협정 탈퇴를 위한 포석이었다는 해석이 나온다.
미국은 기존 핵 협정에서 우라늄 농축 금지를 2030년까지로 한정한 ‘일몰 규정’에 대해 불만을 제기하며 한시적 조치가 아닌 영구적 조치가 이뤄져야 한다고 요구해 왔다. 또 핵 프로그램의 평화적 목적 이용에 대한 검증이 불가능하고 군사기지에 대한 사찰이 제한되는 점, 탄도미사일 관련 내용이 포함되지 않았다는 점도 못마땅해 했다.
프랑스 독일 영국 등 핵 협정 당사국들은 공동성명을 내고 미국에 강한 유감을 표명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트위터를 통해 “핵확산 방지 체제가 위태롭게 됐다”고 비판했다. 페데리카 모게리니 유럽연합(EU) 외교·안보 고위대표는 “이란과의 핵 협정은 해당 지역은 물론 유럽과 전 세계를 위해 중요한 것”이라며 “미국의 탈퇴에도 핵 협정은 유지돼야 한다”고 밝혔다. 러시아 외무부도 “미국의 행동은 IAEA에 대한 국제적 신뢰를 훼손하는 것”이라면서 “합법적인 핵 활동에 대한 미국의 문제제기는 이란에 정치적 보복을 하려는 눈가림”이라고 비난했다.
문제는 미국 없이 핵 협정이 유지될 수 있느냐 하는 점이다. 미 재무부는 핵 협정 탈퇴와 동시에 이란에 대한 경제 제재를 재개한다고 밝혔다. 이란에 진출한 서방 기업들은 미국의 제재 동참 압박에 맞서기보다는 투자를 줄이거나 철수할 가능성이 높다. 프랑스 석유업체 토탈은 이미 이란과의 합작사업을 철회하겠다고 밝혔고, 리처드 그레넬 독일 주재 미국대사는 트위터에 “이란 내 독일 기업들은 즉각 사업을 줄여야 할 것”이라고 썼다.
거센 경제 제재를 감당하면서 이란이 언제까지 핵 협정을 지킬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은 미국의 탈퇴 선언 직후 “필요하다면 우리는 어떠한 제약 없이 우라늄 농축 활동을 시작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란 국회의원들은 9일 테헤란 의사당에서 핵 협정 탈퇴 선언을 비난했다. 이들은 종이로 만든 성조기를 불태우면서 “미국에 죽음을”이라는 구호를 외쳤다.
임세정 기자 fish813@kmib.co.kr
동맹국 다 말렸지만… 기어이 이란 핵 합의 깬 트럼프
입력 2018-05-09 19: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