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대문구 서소문로 근린공원 맞은편. 누가 봐도 목이 좋다 싶은 위치에 특별한 카페가 9일 문을 열었다. 231㎡(약 70평) 규모에 좌석 50개가 마련된 이곳 명칭은 ‘카페테바’. 히브리어인 ‘테바’는 우리 말로 ‘방주’라는 뜻이다.
점심시간이 되자 식사를 마친 손님들이 하나 둘 들어섰다. 입맛이 까다로울법한 40대 여성들도 “공간이 넓고 커피 맛이 괜찮네”라며 칭찬했다. 이들을 위해 커피를 내려 준 바리스타들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위기 여성’들이었다.
한국구세군(사령관 김필수) 로고가 새겨진 빨간색 봉사자 조끼를 걸친 A씨. 50대 여성인 그는 가정 폭력을 피해 무작정 집을 나와 여성 입소시설을 찾았다. 구세군 일자리 지원센터를 통해 바리스타 자격증을 취득했고 앞치마를 둘러멨다. 그는 “살던 세계에서 도망쳐 나와 집도 직장도 없이 막막하게 지내야 했다”며 “구세군 시설에서 예배를 함께 드리며 마음이 편안해졌고 지금은 바리스타가 돼 손님을 맞게 되니 기쁘다”고 소감을 전했다.
이날 A씨가 내린 커피는 100여잔. 한잔에 2000원 하는 커피 값이 이날은 무료다. 커피를 받아든 손님들이 좋아하는 모습에 A씨도 함께 미소지었다. 그는 “손님들로부터 칭찬을 들으니 기분이 좋다”며 “수익금이 노숙인 주거 지원 등에 쓰이는데, 손님들이 많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동안 구세군은 입소시설 생활 탓에 우울 증세를 보이거나 대인 관계에 소극적인 노숙인들을 돌봐왔다. ‘사람들을 마주하고 대화하며 사회 속으로 나오게 할 수 있게 해보자’는 구상의 열매가 바로 카페였다. ‘노숙자들이 넓고 깨끗한 공간에서 사람들과 마주하며 일하도록 지원하자, 그래서 생활비도 벌고 임대 주택을 위한 저축도 하며 희망을 품게 하자’는 취지에서다.
카페 일에는 여성 바리스타 6명 외에 남성 노숙인 17명이 참여한다. 매장 옆 공동작업공간에서 포장지를 접거나 원두를 담고 선물용 커피를 포장한다. 구세군은 카페 위층에 희망 원룸 17곳을 만들어 자활 의지가 있는 노숙인을 받기로 했다. 알코올이나 도박 등 중독자가 아니라면 이곳에서 안정적으로 숙식하며 일도 하고 돈도 버는 셈이다.
주일 오전 11시가 되면 카페는 교회로 변신한다. 의자 위치를 조금만 바꾸면 된다. 노숙인과 이웃 주민을 위해 열린 교회는 카페를 담당하는 이문재 사관의 아내 박정주 사관이 예배를 맡는다. 이 사관은 “노숙인들이 부담 없이 쉼과 회복을 얻는 교회, 커피 한잔에 묵상으로 치유하는 교회를 지향한다”고 말했다.
카페는 지역 주민들에게도 열려 있다. 바자회와 벼룩시장 등 소외 이웃을 돕는 여러 행사를 계획 중이다. 김 사령관은 “노숙인들이 이곳에서 쉼을 얻고 자활 능력도 키워 세상 밖으로 나가면 좋겠다”며 “예배와 함께 하나님을 만나고 인격과 삶이 바뀌는 놀라운 변화가 이뤄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김동우 기자 love@kmib.co.kr
사진=강민석 선임기자
노숙인들 희망 키우는 ‘카페’입니다
입력 2018-05-10 0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