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관광객도 즐겨 찾는 필리핀 휴양지 보라카이. 파나이섬 북서부에 위치한 길이 7㎞, 너비 1㎞, 면적 11㎢의 산호섬이다. 화이트비치·푸카셸비치 등 12개 해변의 고운 모래와 잉크를 풀어놓은 듯 오염되지 않은 푸른빛 바다 같은 청정 자연이 소문이 나면서 세계적인 휴양지가 됐다.
지난달 이곳에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전해졌다. 필리핀 정부가 4월 26일부터 6개월간 잠정 폐쇄를 결정한 것. 오염이 지나치다는 게 이유였다. 여행업계에는 직격탄이 됐다. 항공사들은 서둘러 운휴에 들어갔고, 여행사들은 폐쇄 기간 출발일 고객을 대상으로 환불 절차에 돌입하는 등 어수선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대체 얼마나 오염됐기에 이런 지경에 이른 것일까. 폐쇄 조처를 명령한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은 ‘시궁창’이라고 표현했다. “정말로 썩은 냄새가 난다”는 그의 말이 모든 걸 대변해주는 듯하다.
비슷한 상황은 다른 나라에서도 이미 여러 차례 있었다. 인도네시아 발리는 ‘쓰레기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수백명의 자원봉사자들을 동원해 해변의 페트병 쓰레기 등을 수거하는 작업을 벌이고 있다. 태국도 리어나도 디캐프리오의 영화 ‘비치’로 유명한 피피레의 마야만을 연간 4개월 동안 폐쇄했다. 지난 수십년 관광객들이 늘어난 데다 최근 중국인 관광객들이 폭발적으로 가세하면서 ‘관광 오염’을 감당할 수 없는 처지에 이른 것이 주요 요인으로 지목됐다.
이른바 오버투어리즘(overtourism)이다. ‘지나치게 많은’을 뜻하는 ‘오버’와 여행을 뜻하는 투어리즘이 결합된 말로 ‘과잉 관광’을 뜻한다. 여행지에 수용능력을 넘어선 관광객이 몰리면서 환경·생태계를 파괴하고 오래 기다려야 하는 등 관광의 질을 떨어뜨리는 부작용을 낳는다. 이탈리아, 스페인 등이 오버투어리즘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대표적인 나라로 꼽힌다. 최근에는 베네치아 주민들이 관광객들을 막아서는 시위에 나섰다는 뉴스도 나왔다. 배 위에 올라 입항하는 크루즈를 막고 ‘우리는 당신을 환영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피켓과 깃발을 흔들었다. 스페인 마요르카섬에서는 시민 3000여명이 ‘관광객은 집으로 돌아가라’는 피켓을 들었다. 바르셀로나에서는 한 시민활동가가 관광버스를 공격했다.
보라카이 폐쇄에 국내 대표적 관광지인 제주도가 오버랩된다. 관광도시로 발전하면서 양적 성장을 이뤘지만 제주도를 방문한 관광객들의 불만은 더욱 높아지고 있다. 관광지마다 많은 인파 때문에 제주의 경치를 관람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 구경하기 바쁘다는 뼈 있는 불평이 쏟아진다. 기상 악화로 공항이 폐쇄되면 관광객들은 꼼짝없이 갇히고 공항 대기실은 아수라장으로 변하는 모습은 이제 낯설지 않은 풍경이 됐다. 폐해는 관광객뿐 아니라 지역 주민들에게도 돌아간다. 교통 정체 및 사고 증가, 생태계 파괴, 환경오염, 쓰레기, 상하수도 과부하 등 문제가 주민들 삶의 질을 떨어뜨린다. 심하면 몰려든 관광객들이 도시를 점령하고 삶을 침범해 오래된 상점이나 주민들이 쫓겨나는 투어리스티피케이션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도시개발로 원주민들이 쫓겨나야 하는 젠트리피케이션과 같은 결말이다.
유럽 각국이 대응에 나섰다. 베네치아는 인기 관광지의 방문객 수를 관리하기 위한 ‘방문객 카운팅 시스템’을 도입했다. 대운하에서 수영과 유적지에서 피크닉을 금지하고 위반 시 벌금을 부과하고 있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은 시내 호텔 신축을 금지하고 에어비앤비(숙박 공유 서비스업체)의 영업일수를 연간 50일 이내로 제한하며 숙박객에게 정액의 관광세를 물리고 있다. 관광객 유치는 국가경쟁력을 키우고 경제를 성장시키기 위해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적정선이 필요하다. 과유불급(過猶不及). 제주도가 ‘제2의 보라카이’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엄격한 관광객 총량 제한 등 ‘섬’이라는 환경에 맞는 선제적 대응이 필요해 보인다.
남호철 여행선임기자 hcna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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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을 열며-남호철] 오버투어리즘
입력 2018-05-10 05: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