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몰이 vs 정치투쟁… ‘지방’ 사라진 지방선거

입력 2018-05-09 05:02
정세균 국회의장과 교섭단체 원내대표들이 8일 국회의장 접견실에서 회동에 앞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바른미래당 김동철, 더불어민주당 우원식 원내대표, 정 의장, 자유한국당 김성태, 평화와 정의 의원모임 노회찬 원내대표. 윤성호 기자

‘6·13 선거’ 35일 남았는데 거대 양당, 공약 발표 미뤄
후보 확정 안된 탓이라지만 대형 사건에 지역 이슈 묻혀
작은 정당들만 공약 쏟아내… “선거가 지방자치 후퇴시켜”


6월 지방선거가 9일 기준 35일 앞으로 다가왔지만 제1당인 더불어민주당과 제2당인 자유한국당은 아직 정당 공약을 발표하지 않고 있다. 남북, 북·미 정상회담이라는 초대형 외교안보 이슈가 지방선거 이슈를 가리기 때문이라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하지만 각 정당들이 정책과 지방자치 비전으로 승부하기보다 정치 투쟁에 몰입하고 있다는 비판도 거세다. 지역 공약 중에서도 눈에 띄는 것이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방선거가 중앙정치의 대리전으로 전락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민주당 정책위 관계자는 8일 “후보 확정 상황과 맞물려 진행되기 때문에 선거마다 공약 발표 시기가 다를 수밖에 없다”며 “공약 발표 시기가 너무 늦다는 지적이 있어 이번 주부터 일부 공약을 먼저 발표키로 했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10일부터 단계적으로 지방선거 정책 공약을 발표하고 20일쯤 정당 공약집을 발간할 예정이다.

한국당도 10일부터 순차적으로 공약을 발표할 계획이다. 서민경제 활성화, 일자리 대책, 재건축 시장 활성화 방안 등이 공약에 포함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당 정책위 관계자는 “민주당에 비해 공약 발표가 늦은 건 아니다”고 말했다.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 관계자는 “선거에서 공약은 일종의 고용계약서인데, 공약을 발표하지 않고 뽑아 달라는 것은 백지수표를 달라는 것에 불과하다”며 “여당은 국정 전반의 대형 이슈로, 야당은 단식 투쟁으로 맞서면서 결국 지방이 희생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거대 양당이 공약 발표를 주춤하는 사이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정당들이 발 빠르게 공약을 발표했다. 정의당은 지난달 4일부터 청년 공약을 비롯해 주거·여성·미세먼지 등 분야별 정당 공약을 쏟아내고 있다. 바른미래당도 지난달 5일 과로와 육아 부담 등을 완화하는 것을 골자로 한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 공약 5가지를 발표했다. 민주평화당은 텃밭인 광주를 겨냥한 ‘광주약속 4’를 지난달 22일 발표했다. 5·18 진상규명, 남북 민간교류 활성화, 고용률 향상과 사회적 약작 생활 안정 지원, 미투 2차 피해 방지 등이다.

지역 후보자들 사이에서도 별다른 정책 이슈는 보이지 않는다. 6월 지방선거의 주요 격전지로 분류되는 서울과 경남 선거는 정책 대결보다 정치 구도 대결로 흐르는 분위기다. 서울시장 선거는 박원순 현 시장의 3선 도전과 이를 추격하는 야권 후보들의 ‘박 시장 때리기’로 흘러가고 있다. 경남지사 선거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정책 대결보다 ‘문재인 대통령의 복심’인 김경수 민주당 후보와 ‘정권 견제’를 내세우는 김태호 한국당 후보의 대결로 흐르고 있다.

박상병 인하대 교수는 “지방선거 기간에 지방정치가 유권자들의 삶에 왜 필요한지 공감대를 이끌어내지 못하면 결국 지방분권이라는 이슈는 구호에 그치고 말 것”이라고 우려했다. 지방선거가 오히려 지방자치를 후퇴시키고 있다는 비판도 있다. 박 교수는 “공약이 실종된 채 기호 1번과 2번의 구도 싸움으로 흐를 경우 기초의원 선거도 전체 구도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며 “지방의회에 새로운 인물들이 나타날 기회가 줄어들면서 전체적으로 지방자치의 수준이 떨어지게 된다”고 지적했다.

2010년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은 선거 38일 전, 한나라당은 선거 29일 전에 정당 공약을 발표했다. 2014년 지방선거에서는 새정치민주연합과 새누리당 모두 선거 22일 전에야 공약을 발표했다.









김판 기자 pan@kmib.co.kr

사진=윤성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