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냄새에 뒤늦게 발견… 아빠는 지병으로 숨진 듯
집안 음식 조리한 흔적 없어… 사실혼 아내 수개월전 떠나
겉도는 사회안전망에 씁쓸
눈을 감으니 머릿속이 하얗게 변했다.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 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배고픔도 통증도 느껴지지 않았다. 문득 아이가 칭얼거리는 소리에 눈을 떴다. ‘아이에게 뭘 먹여야 할 텐데…’라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지만 누구에게도 연락하고 싶지 않았다. 아니,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조차 없었다. 옆에서 우는 아이의 모습이 점점 흐려졌다.
아이는 분뇨로 엉망이 된 엉덩이가 불편해서 보챘다. 어느 순간부터 엉덩이에는 아무런 느낌이 없었다. 그저 배가 고팠다. 배고파 울었지만 아빠는 머리를 쓰다듬어 주지도, 등을 토닥거려 주지도 않았다. 목이 터져라 울었지만 아빠는 누워만 있었다. 누구도 집에 오지 않았다.
그로부터 며칠이나 지났을까. 경북 구미시 봉곡동 원룸에 살던 A씨(28)와 그의 16개월 된 아들이 어린이날을 이틀 앞둔 지난 3일 오후 2시30분쯤 숨진 채 발견됐다. 월세가 밀려 몇 차례 원룸을 방문했으나 세입자를 만날 수 없었던 부동산중개인이 이웃 주민에게서 “집안에서 이상한 냄새가 난다”는 얘기를 듣고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과 부동산중개인이 원룸 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부자는 나란히 누워 숨져 있었다. 발견 당시 A씨는 오랫동안 병을 앓은 사람처럼 심하게 마른 모습이었다.
구미경찰서 이봉철 형사과장은 8일 “발견 당시 문은 안에서 잠긴 채 외부인 침입 흔적이 없었고, 가스나 연탄 등 외부 요인에 의한 사망 가능성도 없었다”며 “집안에서 음식을 조리해 먹은 흔적이 없어 아버지는 병으로, 아들은 그 이후에 굶어 숨졌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A씨에 비해 시신의 부패 정도가 덜한 점으로 미뤄 아들의 사망 시기는 A씨보다 늦은 것으로 추측된다는 게 경찰의 설명이다. 경찰은 이들 부자가 4월 말쯤 숨진 것으로 보고 정확한 사인을 밝히기 위해 부검을 의뢰했다. 경찰은 A씨가 사실혼 관계였던 아내와 수개월 전 헤어진 뒤 혼자 아들을 데리고 생활해 온 것으로 보고 있다. 관할 주민센터에 따르면 A씨는 전입신고를 하지 않았고, 그의 아들은 출생신고조차 돼 있지 않았다.
2014년 송파 세 모녀 사망 사건이 발생한 뒤 정부는 제도 개선과 실태조사 등을 통해 복지 사각지대에 놓여 있던 수십만명에 달하는 고위험 대상자를 찾아냈고 실제 많은 이들이 이를 통해 구제됐다. 하지만 지난달 충북 증평에서는 한 모녀가 극단적인 선택을 했고, 경북 구미에서는 누구에게도 도움을 받지 못했던 부자가 숨진 채 발견됐다. A씨의 아들은 엄마 아빠가 있었지만 1년4개월 만에 왔다간다는 흔적조차 남기지 못한 채 사라졌다. 2018년 5월 한국 사회의 한 단면은 여전히 참혹한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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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김재산 기자 jskimkb@kmib.co.kr
그래픽=전진이 기자
이번엔 ‘구미 父子’… 무관심의 비극 언제까지
입력 2018-05-09 0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