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임없는 의료기관 감염사고… 안정적 재원확보 절실”

입력 2018-05-09 17:40
더불어민주당 권미혁 의원이 보건복지부, 쿠키건강TV와 함께 지난달 30일 마련한 ‘국내 의료감염관리 개선방안 모색 정책토론회’. 왼쪽부터 오준엽 쿠키뉴스 건강생활팀 기자, 황인선 의료기관평가인원증 정책개발실 팀장, 김지인 병원중앙공급간호사회 기획이사, 김우주 고대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 엄중식 가천대길병원 감염내과 교수, 안기종 환자단체연합회 대표, 이형민 질병관리본부 의료감염관리과 과장. 박태환 쿠키뉴스 기자

2015년 메르스 사태와 주사기 재사용으로 인한 집단 C형간염 감염사건, 지난해 발생한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사망사건까지, 잇따른 의료기관 감염사고가 사회적 충격을 주고 있다. 이에 더불어민주당 권미혁 의원은 보건복지부, 쿠키건강TV와 함께 4월30일 ‘국내 의료감염관리 개선방안 모색 정책토론회’를 개최하고 의료기관 감염 사고 방지 대책을 논의했다. ‘국내 의료감염 무엇이 문제인가?’라는 주제로 진행된 이번 토론회에서 발표를 맡은 엄중식 가천대 길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의료기관 내 감염사고의 원인을 ‘저수가’로 결론 내렸다. 돈이 없어 감염관리 전담인력 확보가 어려워지고, 감염관리의 구멍이 생긴다는 지적이다.

◇기본적인 감염관리 위한 재정 투입돼야= 엄중식 교수는 “우리나라의 경제적 수준, 병원의 의과학적 수준에 비해 감염관리에 대한 투자가 부족하다. 의료감염관리에 투자하는 정도에 따라 (감염사고 관련) 다른 상황이 나올 수 있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투자가 부족한 이유는 병원 수익과 관련이 있다. 저수가 정책이 지속되고 급격한 외부 환경 변화로 인해 대부분 병원에서 경영환경이 호전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며 특히 중소병원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에 따르면 2013년 기준 300병상 미만 병원의 개·폐업률은 500병상 이상이 각각 0.2%, 0.4%, 300∼499병상이 4.5%, 4.5%인데 반해 ▶100∼299병상은 48%, 47.3% ▶100병상 미만은 47.3%, 47.7%로 높았다. 이에 대해 엄 교수는 “우리나라 의료기관의 90%는 공공이 아닌 민간 의료기관이다. 민간에서 의료서비스를 거의 전적으로 맡고 있는 상황에서 300병상 미만 병원의 휴·폐업률이 높은 것은 의료 질 관리에 투자할 여력이 없다는 것을 뜻한다”고 풀이했다.

경영상 압박이 이어지는 현실 속에서 감염관리라는 소비 위주의 운영을 이어갈 수는 없는 상황인 셈이다. 이렇다 보니 의료법 시행규칙 상 150병상 이상 의료기관이 설치해야 하는 감염관리실이나 전담인력을 유지하기도 어렵다. 실제 2013년 조사결과에 따르면 감염관리실 전담인력은 상급종합병원 3.7명, 300병상 이상 종합병원 1.3명, 300병상 미만 종합병원은 0.7명, 기타 유형은 0.1명이 배치됐을 뿐이다. 이에 엄 교수는 ▶감염관리 수가 현실화 ▶기본시설 구축 지원을 비롯해 ▶일회용품 급여화 ▶병원 종사자 교육 ▶상시감염체계 마련 등 정부의 적극적인 투자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국내 의료관련감염 ‘지침’만 세계수준= 토론에 참석한 전문가들 또한 감염관리의 근본적 개선을 위해 정부의 재정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데 공감했다. 나아가 재정이 뒷받침돼야 의료기관이 감염관리 지침을 수행할 수 있을 것이라며 정부의 능동적인 대처와 고민도 함께 주문했다.

김지인 병원중앙공급간호사회 기획이사는 의료기관이 지침에 따라 치료 도구의 ‘소독과 멸균’을 시행할 수 있도록 보상체계가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의료법과 의료기관 인증평가 조사 기준, 질병관리본부 또는 대한의료감염관리학회에서 제시하는 지침 등에 따라 의료기구 재처리가 이뤄져야 하지만 세계적 수준의 지침에도 불구하고 재정적 뒷받침이 되지 않아 현장에서 제대로 이행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병원중앙공급간호사회가 2017년 설문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160개 의료기관 중 98.8%(158개)가 세척·포장·멸균에 대한 병원 내부 지침서나 규정집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러나 ‘수술기구’의 재처리 과정에서 세척과 포장, 멸균 등 전 과정을 전담하는 중앙공급실에서 시행하는 의료기관은 33%에 불과했다. 체내 삽입기구 등의 멸균 시 멸균여부를 확인하는 지표를 사용하지 않는 경우도 47.5%에 달했다.

이와 관련 김 이사는 “감염관리는 수익을 내는 사업은 아니지만 환자안전을 위해 필수적인 요소”라며 “국내 감염관리 지침은 세계적 기준에 맞춰 마련됐다. 그러나 그걸 제대로 수행할 수 있는 여건 마련의 문제가 있다. 의료기구 재처리에 대한 보상은 전무한 상태”라고 꼬집었다.

좌장을 맡은 김우주 고대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 또한 선진국 수준의 국내 관리지침을 의료기관에서 수행할 수 있도록 진료 현장과 의료기관의 현실을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미국처럼 수가나 투자가 제대로 이뤄지는 환경에서 만들어진 지침을 국내에서 그대로 시행하다간 손을 씻다 환자가 사망할 것”이라며 “우리나라 현장에 맞는 지침을 만들어야 한다”는 견해를 밝히기도 했다.



◇정부, 현장 실행성 높일 대책안 마련 ‘약속’… 하지만= 이에 정부는 이르면 6월 현장에서 이행할 수 있는 종합대책안을 내놓겠다고 발표했다. 이형민 질병관리본부 의료감염관리과장은 “그간 여러 대책을 세워왔지만 종합적으로 얼마나 감염관리가 되고 있는지에 대해 조사된 내용은 없다. 지난해 말 이대목동병원의 불행한 사고 발생 이후 ‘의료관련감염 종합대책’을 마련하고 있다”면서 “종합대책의 내용이 다소 식상하고 새로운 것이 없다고 느낄 수 있지만 지난 10년간 발표한 감염관리대책을 이번 종합대책에 유기적으로 연계해 현장 실행성을 높이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르면 6월 종합대책을 발표할 예정”이라고 답했다.

한편, 이날 자리에 참석한 오준엽 쿠키뉴스 기자는 감염관리에 대한 책임과 부담을 병원에만 지워야 하는지, 의료기관평가인증의 문제는 없는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특히 치과를 비롯한 의원급 의료기관의 관리·감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으며 실태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언급했다. 안기종 대표는 “의료기구 세척멸균이 항암제 개발 만큼이나 중요하다는 점을 알려나가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이 과장은 문제 개선을 위한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그는 “현재까지 정부의 의료관련감염에 대한 관리·감독은 감염위험이 높은 침습적 행위가 일어나는 병원을 위주로 시행되고 있다”면서 “중소병원과 개원가는 3년 정도 시간이 더 필요하다. 질병관리본부 단독으로 진행할 수 있는 부분도 아니기 때문에 민간과 소통하며 방안을 도출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의료기관평가인증에 대해서는 황인선 의료기관평가인증원 정책개발실 팀장이 “현재 이대목동병원 사태를 계기로 3주기 의료기관인증평가 지표개선이 이뤄지고 있다”며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 감염관리에 대한 인증평가가 보다 면밀히 이뤄질 수 있도록 개선해나가겠다는 뜻을 전했다.

유수인 쿠키뉴스 기자 suin92710@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