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 대통령, 비핵화 합의 이후 ‘연대 보증’ 나선다

입력 2018-05-08 05:05
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6월 미국 워싱턴DC 백악관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의 한·미 정상회담에 앞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오는 22일 백악관에서 취임 후 4번째로 트럼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한다. 국민일보DB
“과거 북핵 파기의 역사 더 이상 반복 돼선 안돼” 文, 트럼프에 메신저 역할 文,
북·미 정상과 신뢰 바탕 북·미 회담 의제 조율 넘어 향후 북·미 관계에도 염두


오는 22일 한·미 정상회담은 북·미 정상회담 준비를 위한 ‘원포인트’ 회담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만나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회담을 막판 조율하기 위한 차원이다. 북·미 정상회담 의제와 노하우가 논의될 이번 회담의 가장 큰 목적은 ‘연대보증’이다. 과거 북핵 합의 파기의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직접 문 대통령이 북·미 간 신뢰 회복을 위한 중재자로 나서는 것이다.

문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과 북한의 비핵화 프로세스 구상, 이에 대한 단계별 보상 방안과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해제 등을 논의할 것으로 전망된다. 남북 정상회담에서 김 위원장과 나눈 대화도 전할 예정이다.

북·미 간 정상회담 의제와 세부 내용들이 대부분 합의됐다는 관측이 나옴에도 불구하고 문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 막판 조율에 나서는 것은 북·미 간 불신의 역사와 관련이 깊다. 북·미는 그동안 양자 대화와 북핵 6자회담을 통해 비핵화와 관계 정상화에 합의한 전례가 있다.

2005년 6자회담 9·19 공동성명과 2007년 2·13 및 10·3 합의에 따라 북한은 핵시설 불능화에 합의하고 영변 원자로 냉각탑을 폭파했다. 하지만 직후 핵 사찰 및 검증 방법을 놓고 북·미 간 이견이 좁혀지지 않아 불능화 작업이 중단됐다. 2012년 북·미 2·29 합의에서도 양국은 각각 핵실험·미사일 발사 중단과 식량 지원에 합의했지만 두 달도 되지 않아 북한의 광명성 3호 발사로 결렬 수순을 밟았다. 모두 상대방에게 합의 우선 이행을 요구하다 벌어진 것들이다. 북한이 핵 개발을 계속할 것이라는 미국의 의심, 미국이 식량 지원 등 약속을 지키지 않을 것이라는 북한의 불신이 작용한 결과였다.

문 대통령이 북·미 정상회담에 개입한 것은 이런 전철을 다시 밟지 않기 위해서다. 현재 북한과 미국 모두 상황이 긍정적이진 않다. 미국 보수 진영은 트럼프 대통령의 대북 스탠스가 급진적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북한에 대한 제재와 압박이 성과를 내는 시점에서 지나치게 빨리 대화에 나섰다는 것이다. 미 행정부 참모들의 반대도 적지 않다. 김 위원장 역시 핵·미사일을 포기하는 대가로 경제적 성과를 내야 하는 만큼 무리한 요구를 내걸 가능성도 높다. 여권 관계자는 7일 “북한의 비핵화 프로세스와 미국의 보상이 단계적으로 동시에 이뤄진다 해도 결국은 시간차가 있기 마련”이라며 “그 과정에서 북·미 간 불신이 생기면 다시 합의가 깨지는 건 기정사실”이라고 말했다. 이어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은 이런 문제가 생겼을 때 서로 의지할 수 있는 신뢰를 쌓은 적이 없다”며 “양 정상과 깊은 신뢰 관계를 맺은 문 대통령의 역할이 중요한 이유”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의 미국 방문이 단순히 북·미 정상회담 의제 조율을 위한 일회성이 아니라 향후 북·미 관계를 염두에 둔 것이라는 의미다. 문 대통령은 북·미 중 한쪽이 약속을 지키지 않거나 상대를 의심할 때 직접 해결하려는 구상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일종의 보증 역할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문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과 세 차례 만났고 김 위원장과도 정상회담과 특사 파견을 통해 신뢰를 쌓았다”며 “한 번의 북·미 정상회담으로 북핵 문제가 끝나는 게 아니라는 걸 문 대통령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강준구 기자 eyes@kmib.co.kr

그래픽=공희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