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美 비핵화 줄다리기, 완제품 핵·미사일 해체 등 ‘첩첩산중’

입력 2018-05-08 05:05

핵개발 시설 해체 합의해도 평화협정 체결 전까지 北은 핵탄두 포기 않을 가능성
고농축우라늄 지하 생산시설 北이 신고 안하면 파악 어려워
핵 개발인력 재취업도 난제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남북 정상회담에서 ‘완전한 비핵화’를 천명했지만 전체 핵 폐기 프로세스와 비교하면 고작 한 발짝 내디뎠을 뿐이다. 북한과 미국은 6월 정상회담을 앞두고 비핵화 범위와 대상, 절차 등을 놓고 치열한 줄다리기 협상을 본격화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미 정상회담 합의를 통해 비핵화 절차가 시작되더라도 실전배치를 완료한 핵무기와 탄도미사일 해체, 핵 개발 인력 재취업, 비밀 지하 핵시설 사찰 등 난제는 산더미다.

북한 핵시설은 평안북도 영변 핵시설을 제외하고는 외부 세계에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영변에는 연구용 원자로(IRT-2000) 1기와 5㎿ 원자로 1기, 25∼30㎿ 원자력발전소 1기가 위치해 있다. 플루토늄 재처리시설인 방사화학실험실과 우라늄 농축시설, 핵연료봉 제조시설, 핵연료 저장시설, 동위원소 생산연구소 등도 영변에 있다. 이외에 영변에서 북쪽으로 25㎞ 떨어진 태천에 200㎿ 원자력발전소 1기, 평양 김일성종합대학에 교육용 임계시설이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 시설들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거의 대부분 1992년 4월 북한이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제출한 신고서에 포함된 것들이다. 북한은 6자회담이 가동되던 2000년대에 9·19 공동성명 등 비핵화 공약을 했지만 사찰 및 검증 단계에서 합의를 깼다. 전문가들은 겉으로 드러난 영변 핵시설 외에 숨겨진 지하 핵시설이 북한 전역에 산재해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6일(현지시간) 북한이 핵탄두 20∼60개, 핵시설 40∼100개를 보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윤덕민 한국외대 석좌교수는 7일 “북한은 완전한 사찰을 한 번도 받아본 적 없다”며 “위성으로 관측되는 시설 외에 지하 시설은 상당히 늘어났을 것”이라고 말했다. 윤 교수는 “북한은 1992년 핵확산금지조약(NPT)을 탈퇴하면서 IAEA가 사찰할 수 있는 길을 막아버렸다”며 “봉인이 제대로 돼 있는지, 핵 활동 동향이 있는지 관찰할 뿐이었지 사찰은 아니었다. 그마저 2009년 IAEA 감시요원이 추방된 이후에는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고 부연했다.

영변 핵시설 내 원자로는 짧으면 1개월 안에 폐쇄가 가능하다. 북한만 동의한다면 원자로에 콘크리트를 부어 영원히 운전을 불가능하게 하는 ‘영구 불능화’ 조치를 취할 수 있다. 다만 이 방법은 방사능 오염 우려가 있다. 원자로 등 핵심부만 따로 떼어 콘크리트를 타설하고 나머지 시설은 차례로 해체하는 ‘영구 폐쇄’는 약 2년이 소요된다. 지난해 가동 중단된 고리 1호기처럼 통상적인 상업용 원전 해체 방법을 사용할 경우 약 15년이 걸린다.

문제는 고농축우라늄(HEU) 생산시설이다. 플루토늄 생산은 원자로 연기 배출 등 인공위성을 통한 동향 파악이 가능하다. 이에 반해 HEU는 지하 시설에 고성능 원심분리기를 설치하고 돌리면 외부 세계에 들키지 않는다. 북한이 HEU 관련 시설을 얼마나 성실히 신고하느냐에 비핵화의 성패가 달린 셈이다. 북한은 1999년쯤 파키스탄 핵 과학자 압둘 카디르 칸 박사로부터 원심분리기 20여개와 관련 기술을 입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북한은 2010년 미국 핵 과학자 지그프리드 헤커 박사에게 영변 핵시설 내 우라늄 농축 공장을 전격 공개했다. 영변 외에도 북한은 HEU 생산시설을 최소한 두 곳 더 보유한 것으로 추정된다. 김진무 세종연구소 객원연구위원은 “북한이 1990년대 구소련으로부터 알루미늄 150t을 수입했다. 원심분리기 2700개에 해당하는 양”이라며 “북한이 보유한 원심분리기를 1년 동안 가동하면 HEU를 80㎏ 정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완제품 핵탄두와 탄도미사일 해체는 또 다른 문제다. 북한이 핵 개발 시설 해체에 동의하더라도 완제품만큼은 평화협정 체결 전까지 포기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핵 개발 관련 인력은 우크라이나 사례처럼 재교육 및 해외 취업 알선 등의 조치를 취해야 하지만 북한 당국이 받아들일지 미지수다. 박지영 아산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북한 군사시설을 전부 열어볼 수는 없다”며 “개발 인력도 일일이 쫓아다니며 감시할 수 없다. 결국 북한 당국을 신뢰하고 들어갈 수밖에 없는데, 북·미 간 상당한 조율 과정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성은 이상헌 기자 jse130801@kmib.co.kr

그래픽=공희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