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례비 지원 평균 41일 소요… 900억 중 절반 이상이 운영비
본래 목적 잃었다 지적 거세… 법무부·여가부 개선방안 보고
기재부 김용진 2차관 “문제의 본질을 보라” 부처에 쓴소리
정부는 살인범죄 피해 유가족에게 장례비를 지원하고 있다. 하지만 장례비 신청부터 심의, 지급까지 평균 41일(지난해 기준)이나 걸린다. 장례를 치르고 한 달이 넘어서야 장례비용이 나오는 셈이다. 이 돈의 출처는 범죄피해자 지원을 목적으로 ‘범죄피해자보호기금(범피기금)’이다.
범피기금이 무늬만 범죄피해자 지원일 뿐 본래 목적을 잃었다는 지적이 거세다. 연간 900억원 가까이 집행되지만 정작 범죄피해자에게 직접 가는 돈은 4분의 1에 불과하다. 절반 이상은 인건비 등 운영경비로 쓰인다. 정부부처 간 협의·조정이 잘 이뤄지지 않으면서 제대로 범죄피해자를 지원하지 못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예산을 총괄하는 기획재정부 김용진 2차관이 “문제의 본질을 보라”며 쓴소리를 던진 이유다.
7일 기재부 등에 따르면 벌금 수납액의 6%를 재원으로 하는 범피기금의 올해 집행 예정금액은 880억원이다. 기금은 법무부(강력범죄), 여성가족부(성폭력·가정폭력), 보건복지부(아동학대)가 나눠서 집행한다. 이러다보니 중복·유사사업으로 효율성이 떨어진다. 법무부는 강력범죄피해자를 대상으로 심리지원을 하는 스마일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이 센터의 이용자 가운데 40%가량은 성폭력 피해자다. 여가부가 운영하는 해바라기센터와 업무가 겹친다.
또 범죄피해자들이 조기에 일상으로 복귀하도록 돕는 긴급생계비 지원 등 ‘긴급단계 필요 예산’은 전체 기금 집행액의 10%에 못 미친다. 반면 민간단체 보조금 지급, 각종 위원회 수당 등 간접비용이 피해자 직접 지원보다 배 이상 많다.
기금 집행도 경직돼 있다. 범죄피해자가 집에서 한참 떨어진 스마일센터를 방문하는 것보다 가까운 전문 의료기관에서 치료받기를 원할 수 있다. 이 경우 ‘상담바우처’를 도입하면 범죄피해자의 선택권을 넓힐 수 있다.
여러 지적과 비판이 제기되자 법무부와 여가부는 지난 4일 열린 재정관리점검회의에서 범피기금 개선안을 보고했다. 여가부는 범피기금 가운데 성폭력사업을 일반예산으로 변경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법무부는 내년부터 기금 충당률을 벌금 수납액의 6%에서 8%로 올리는 것을 검토한다고 밝혔다. 두 부처 모두 ‘효율’보다 ‘외형’에만 관심을 기울인 것이다.
이에 김 2차관은 “범피기금 일부를 일반회계로 넘기는 게 국민에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질타했다. 기재부 관계자는 “국민은 신속하고 정확한 범죄피해 지원을 원할 뿐 재원이 기금인지, 일반예산인지 관심 없다. 부처 간 밥그릇 싸움을 하지 말라는 경고”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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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이성규 기자 zhibago@kmib.co.kr
삽화=전진이 기자
무늬만 범피기금… 피해자에게 4분의 1만 직접 지급
입력 2018-05-08 05: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