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탄도미사일·생화학무기 폐기 인공위성 발사 중단까지 요구한 듯
양측 사이 새 대척점 생기면서 회담 장소·시기 발표 지연 관측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미 정해졌다”고 밝힌 북·미 정상회담의 날짜와 장소 발표를 앞두고 북·미 간에 미묘한 긴장 기류가 형성되고 있다. 양측이 비핵화 수준과 포기할 무기의 범위를 둘러싸고 막판 힘겨루기를 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5일(현지시간) 오하이오주에서 열린 세금개혁 토론회에서 “북한과 논의가 잘 되고 있으며 날짜와 장소 모두 협의가 끝났다. 조만간 발표될 것”이라고 예고했다. 그는 전날에도 전용기 에어포스원에서 기자들에게 “나는 날짜와 장소를 갖고 있다. 곧 발표하겠다”고 말했다.
거듭된 발언에 비춰보면 실제로 북·미가 회담 날짜와 시기를 타결봤을 가능성이 있다. 그럼에도 발표가 늦어지고 있는 것은 북·미 간에 뭔가 새로운 대척점이 생겼기 때문일 수 있다. 특히 미국이 비핵화에 대한 높은 기준과 함께 핵 이외 다른 것들에 대한 포기를 요구했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우선 비핵화 수준과 관련해 미국은 연일 ‘영구적인(permanent) 비핵화’를 언급하고 있다.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야치 쇼타로 일본 국가안전보장국(NSC) 국장을 만나 “북한의 모든 핵무기와 탄도미사일, 생화학무기와 관련한 프로그램의 완전하고 영구적인 폐기라는 공동의 목표를 재확인했다”고 밝혔다.
앞서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도 지난 2일 취임사에서 항구적이고 검증 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Permanent Verifiable Irreversible Dismantlement) 핵 폐기를 강조했다. 미국은 기존에는 항구적이라는 표현 대신 완전한(Complete)이라는 말을 써 왔다. 항구적 폐기는 일회성 핵 폐기뿐 아니라 영구적으로 핵 개발을 포기한다는 개념으로 북한이 받아들일 수 있을지 의문이다.
볼턴 발언 중 폐기 대상에 모든 탄도미사일과 생화학무기까지 포함된 것도 눈에 뛴다. 여기에 더해 미국의 소리(VOA) 방송은 7일 미 국무부 관계자를 인용해 “미국이 요구하는 북한의 미사일 시험발사 중단에는 인공위성 발사도 포함된다”고 보도했다. 북한은 과거 장거리 미사일 은하 3호, 광명성 4호 등을 시험발사할 때 평화적 우주 개발이라고 주장했다.
미국의 대북 제재 입장도 달라진 게 없다.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양제츠 중국 외교담당 정치국 위원과 통화하며 “북한이 비핵화를 향한 구체적인 행동에 나서기 전까지 현 수준의 제재와 압박을 유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후 북한이 미국을 강하게 비난하고 나선 것도 ‘대립 기류’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6일 “미국이 우리의 비핵화 의지가 제재 압박의 결과인 것처럼 여론을 오도하고 있다”며 “동시에 핵 포기 전까지 제재·압박을 늦추지 않겠다고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는 모처럼 마련된 대화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고 정세를 원점으로 되돌리려는 위험한 시도”라고 경고했다.
워싱턴=전석운 특파원, 이상헌 기자 swchun@kmib.co.kr
북-미, PVID·인공위성 놓고 막판 물밑 싸움
입력 2018-05-07 17:59 수정 2018-05-07 2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