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북·미 신경전 자제하고 핵사찰 일정표 마련에 집중해야

입력 2018-05-07 18:09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양측이 신경전을 벌이는 분위기다. 미국이 강화된 비핵화 기준과 북 인권, 생화학무기 폐기를 언급하고, 북한은 북·미 정상회담 합의 이후 처음으로 미국을 공개 비난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에 이어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최근 북한의 모든 대량살상무기에 대한 폐기를 강조하면서 줄다리기가 계속되고 있다. 대량살상무기는 북한의 핵무기뿐 아니라 생화학무기까지 모두 포함된 개념이다.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미국이 북한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여가려는 의도로 보인다. 앞서 폼페이오 장관은 기존의 ‘CVID’(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 대신 ‘PVID’(영구적이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를 주장하기도 했다. 이에 맞서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미국이 우리의 평화 애호적인 의지를 나약성으로 오판하고 압박과 군사적 위협을 계속 추구한다면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며 “반공화국 인권 소동에 열을 올리는 등 한반도 정세를 또 다시 긴장시키려 하고 있다”고 했다.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도 “미국은 인권재판관 행세를 할 지위에 있지 않다”고 비난했다.

다음 달 북·미 정상회담이 열리기 직전까지 협상 주도권을 쥐기 위한 양측의 신경전이 가열될 가능성이 없지 않다. 그러나 지나치면 비핵화 협상에도 악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다. 핵심은 북한의 비핵화다. 북한은 핵을 완전히 폐기하고, 미국은 북한에 대해 체제 보장과 경제 지원을 한다는 상호 약속과 신뢰에서 출발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오는 22일 워싱턴에서 갖는 한·미 정상회담이 중요하다. 북·미 정상회담의 성공을 위한 중재와 디딤돌 역할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비핵화 시간표를 놓고 북·미 간에 합의를 도출하는 것이 당면한 과제다. 이를 위해서는 무제한적인 핵 사찰 활동부터 이끌어내야 한다. 미국 정보기관 등에 따르면 북한은 20∼60개의 핵탄두를 제조했고 40∼100개의 핵시설을 보유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미국 뉴욕타임스가 최근 보도했다. 그러나 북한의 핵시설이 외부 세계에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는 것이 문제다.

1994년 북·미 제네바 합의 당시 미국 수석대표였던 로버트 갈루치 전 국무부 북핵특사는 언론 인터뷰에서 “우리는 북한의 비핵화를 검증할 수 없다. 북한이 제시한 자료에 따른 검증만 가능할 뿐”이라며 “예컨대 북한이 25개의 핵무기가 있다고 밝히면 우리는 그게 북한이 가진 전부인지 밝혀낼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핵물질과 핵무기는 너무 작고, 북한의 핵 과학자가 남아 있는 이상 해체된 것들은 복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완벽한 핵사찰 방식과 일정을 마련하는 것이 급선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