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기업·마을공방·마을정원… 정(情)을 살려야 동네가 산다

입력 2018-05-09 05:00 수정 2018-05-09 09:02
제주도 서귀포시 무릉2리 주민들이 공동 생산한 농산물을 지난 3일 마을기업 ‘무릉외갓집’에서 김윤우 대표(오른쪽)와 함께 배송 박스인 ‘꾸러미’에 담고 있다. 김유나 기자
부산 해운대구 우2동에 조성된 마을공방에서 주민들이 소품 만들기를 하고 있다. 행정안전부 제공
행정안전부와 KT가 구축한 강원도 평창 의야지마을의 ‘5G 빌리지’ 내 카페에서 주민들이 증강현실(AR) 콘텐츠를 체험하고 있다. 행정안전부 제공
경기도 의정부시 '무한상상공원'에서 시민들이 꽃밭을 가꾸고 있다. 행정안전부 제공
제주 서귀포 마을기업 ‘무릉외갓집’ 신선한 농산물 전국 보급 앞장
부산 해운대구 우2동 ‘동백공방’ 지역 주민 소득·일자리 창출 도와
경기도 의정부시 ‘무한상상공원’ 미군 기지 활용 공동체 의식 심어줘
강원도 대관령의 ‘의야지 마을’ 통합지원사업으로 인구 늘어나

지방은 '소멸' 위기에 놓여있다. 지역 특색을 잃어가면서 마을 공동체의 정(情)도 사라지고 있는 상황이다. 행정안전부는 지역에 활기를 불어넣기 위해 팔을 걷어붙였다. 지역이 살아나야 균형발전을 이룰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지역에 다시 생기를 불어넣을 수 있는 키워드로 '주민참여를 통한 공동체 회복'에 주목하고 있다. 지역 주민들이 수익사업에 나서는 '마을기업'이나 지역 내 유휴공간을 활용한 '마을공방', 주민들이 함께 꽃밭·텃밭을 일구는 '마을공동체 정원', 민간기업의 사회공헌 사업을 연계하는 '인구감소지역 통합지원사업' 등이 그것이다. 이웃이 함께 일하며 머물 수 있는 공간을 확대하면 자연스럽게 지역의 경쟁력도 살아날 것이라는 계산이다.

‘정’ 파는 마을기업… 소득·일자리 일등공신

지난 3일 찾은 제주 서귀포시 대정읍에 위치한 올레길 11코스 종점. 큰 컨테이너 모양의 건물이 눈에 띄었다. 안으로 들어서자 20여종의 과일과 야채, 곡물들이 놓여있었다. 이곳은 행안부와 제주특별자치도가 지원하는 마을기업 ‘무릉외갓집’이다. 지난해 6월 문재인 대통령이 방문하면서 유명세를 탄 곳이기도 하다. 46곳의 농가가 참여해 제주에서 키운 과일과 야채를 무릉외갓집에 납품하면 전국에 ‘꾸러미’ 형태로 주 1회 또는 월 1회 정기 배송하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번 달 ‘월간꾸러미’ 콘셉트는 ‘청보리축제가 끝난 가파도’였다. 지역 농부들과 직원들이 모여 구성에 대한 아이디어도 나눴다. 육지에서는 보기 어려운 미역귀까지 붙어있는 건미역과 보리로 만든 미숫가루, 우도 땅콩이 정성스레 담겼다. 매주 화요일 진행되는 배송 포장 작업에는 지역 어르신들이 함께 참여한다. 이웃과 함께 생산한 과일과 야채를 담으며 담소도 나누고 일당 7만원을 받는다.

민간 기업 관점에서 보면 무릉외갓집은 이해가 가지 않는 점 투성이다. 정해진 중량을 늘 훌쩍 넘는다. 무게를 정확히 맞추기 힘든 탓에 ‘덤’을 더 얹어 주기 때문이다. 또 회원들의 사정을 고려해 배송을 쉬어가기도 한다. 일반 유통업체 납품이었다면 농가에선 수요가 들쑥날쑥해 일정치 않다며 납품을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마을 기업에는 민간 기업에 없는 ‘이웃 농부’가 경쟁력이다. 김윤우 무릉외갓집 대표는 “‘무릉외갓집’은 말 그대로 외갓집처럼 푸근한 인심으로 제주 농부들의 정을 담는다는 뜻”이라며 “마을 공동체를 복원하고 제주의 신선한 농산물을 전국에 전한다는 자부심으로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무릉외갓집은 마을 사랑방이기도 하다. 무릉외갓집은 농사일에 지친 이웃들을 위해 정기적으로 문화 공연과 영화 상영을 하고 있다. 행안부는 올해도 마을기업 88곳을 지정해 청년 참여도 늘리고 일자리 창출에 기여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는 계획이다.

낡은 경로당이 지역 살리는 마을공방으로

부산 해운대구 우2동에 위치한 ‘동백공방’은 지어진 지 40년이 넘은 ‘우2동 경로당’이 있던 곳이다. 마을 어르신들은 흉물스럽다고 외면했던 곳이었다. 하지만 2016년 1월 이곳은 ‘동백공방’이라는 간판이 내걸렸다. 행안부에서 추진하는 마을공방 공모에 선정돼 주민들의 사랑방으로 거듭났다. 1층 동백공방에서는 지역주민을 대상으로 한 문화교실이 매일 다른 내용으로 열린다. 지역에 솜씨 있는 주민이 선생님이 돼 도자기나 뜨개질, 자수 등 문화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이다. 한 달 약 200명의 주민들이 이곳에서 문화교육 수업을 받으며 취미활동을 공유하고 있다. 일부 주민들은 재능기부 형태로 이웃을 위한 수업에 나서기도 한다. 마을공방으로 변신한 뒤로는 공방 수업을 듣기 위해 참석하는 젊은 사람들도 늘어났다.

2층은 매일 30명의 지역 어르신들이 일하는 일터로 거듭났다. 해운대구에서 지역 제조업체와 연계해 일감을 주면 어르신들이 일을 하는 방식이다. 전자부품 조립이나 전선 끼우기 등 간단한 작업을 3시간씩 하면 한 달에 20만∼40만원의 수입이 손에 주어진다.

행안부는 동백공방과 같이 지역 특성을 고려한 마을공방을 조성해 지역주민들의 소득이나 일자리 창출을 돕고 있다. 2015년 11곳을 지정한 데 이어 2016년 15곳, 지난해 11곳의 마을공방을 열어 현재 37곳을 운영 중이다. 올해는 총 사업비 10억원을 들여 5곳 내외의 마을공방을 새로이 조성한다.

주민이 함께 가꾸는 마을 텃밭·꽃밭

경기도 의정부시에 위치한 ‘무한상상공원’은 1951년부터 2007년까지 미군 캠프홀링워터 부지였다. 미군이 이 지역을 반환한 뒤에도 이 지역은 미군부대 담장과 철조망이 흉물스럽게 남아있었다. 의정부시는 2016년 행안부 마을공동체 정원 조성 공모사업에 지원했고 덕분에 1만1244㎡ 규모의 마을공동체 정원이 탄생했다.

무한상상 시민정원은 단순히 공원의 기능만 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들이 직접 정원을 가꿀 수 있도록 체험의 장으로 꾸며졌다. 주변은 대형 백화점과 지하철역 등이 자리 잡아 유동인구가 많은 번화가다. 그만큼 시민들의 공간 속으로 정원이 들어와 정원을 더 가깝게 느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농사 체험을 위한 도시농부학교나 꼬마농부교실, 원예교육 등이 상시 진행되고 있다. 향후에는 주민 여가공간을 조성하고 일자리를 창출하는 등 공동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계기로 발전시킨다는 계획이다.

마을공동체 정원이 만들어지면서 무한상상공원은 주민들이 함께 텃밭을 가꾸며 정을 나누고 힐링하는 공간이 됐다. 화단이나 텃밭 중간 중간에 공동관리·휴게 공간이 함께 조성돼 주민들이 같이 꽃밭을 만든다는 ‘공동체 의식’이 자라났다. 공통의 흥미를 공유하며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역할도 한다. 마을공동체가 발전할 수 있는 공간이 될 뿐 아니라 생활환경이 개선되고 방문객이 늘어난다는 장점도 있다. 올해 행안부 사업신청 기준 면적이 5000㎡에서 3000㎡로 완화되면서 참여는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소멸’위기 지역에서 발전 지역으로 재탄생

강원도 평창 대관령 삼양목장과 하늘목장 초입에 있는 해발 800m 의야지마을은 인구가 200여명에 불과하다. 마을이 아예 없어질 위기에 처한 대표적인 지역이다. 행안부는 2017년 이곳에 KT 사회공헌사업 ‘기가스토리 프로젝트’를 유치했다. 지난 2월 세계인의 관심이 집중됐던 평창동계올림픽에서 세계 최초 5세대(G) 이동통신기술을 적용한 ‘5G 빌리지’를 선보이면서 관광객들의 발길을 붙들었던 곳이기도 하다.

특히 눈에 띄는 곳은 ICT(정보통신기술) 관광안내소인 ‘꽃밭양지 카페’다. 카페에 방문하면 5G 네트워크와 증강현실(AR), 홀로그램 등 ICT를 체험할 수 있다. 이외에도 멧돼지 퇴치 장치, 무인택배시스템 등 주민 생활 편의를 위해 IT 기술을 접목한 서비스들이 마을에 적용됐다. 올해 12월에는 지역활력센터가 건립돼 지역 생산물 홍보전시장은 물론 노인회관과 주민공동체 활동 공간도 마련된다. 기가스토리가 진행된 이후 평창군 횡계2리 인구는 2016년 213명에서 올해 3월 228명으로 소폭 늘어났다. 행안부는 인구급감지역 지원 사업을 통해 단순한 인구 유출 억제가 아니라 인구 증가 효과가 발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올해에도 안정된 청년 일자리 창출, 지역 자생적인 생태계 구축을 위한 통합지원사업을 지속적으로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제주=김유나 기자 spri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