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검사의 성추행 피해 고발을 계기로 오랫동안 침묵했던 여성들의 미투(MeToo), 성폭력 가해 폭로가 확산되고 있다. 발화자들은 자신이 경험한 불행이 미래 세대에 되물림되지 않기를 바라며 우리 사회의 추악한 민낯을 여지없이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정치적 음모론, ‘가짜 미투’ 선별론, 선량한 가해자에 대한 마녀사냥론과 함께 일부 언론의 선정적 보도, SNS와 일상에서의 미투에 대한 조롱, 희화화 등 자신의 일생을 걸고 입을 연 이들에 대한 무분별한 2차 가해는 이미 위험 수위를 넘었다. 더욱이 성범죄자로 오해받을 것을 두려워하거나 억울해하는 남성들의 펜스룰 대응은 미투 운동의 본질을 외면하고 있어 우려가 매우 크다.
미투는 성적 대상으로 여겨져 온 여성에 대한 성차별 구조와 관행, 권위주의적 문화에 대한 저항이다. 정치, 문화예술, 학계 등 시민의 삶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영역에서 권력과 자원이 대부분 남성에게 집중되어 있는 현실은 위계적 성범죄의 구조적 맥락이다.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 소비하는 관행과 하급자에 대한 상급자의 업무 외적 통제와 강압을 기반으로 하는 권위주의 문화는 매개변수가 된다. 그동안 조직 내에서 성희롱과 성폭력 피해자의 문제제기는 합리적 절차를 거쳐 받아들여지기보다는 사소한 일로 치부되거나 피해자 비난으로 귀결되거나 은폐되어 왔다. 미투는 이러한 불의에 대한 여성들의 인내가 한계에 도달했음을 보여주는 징후다.
미투에 대한 펜스룰(Pence Rule) 대응은 성차별을 더욱 공고히 하겠다는 퇴행적 발상이다. 여성과의 접촉을 의도적으로 차단함으로써 위험을 피해보겠다는 펜스룰은 언뜻 억울한 범죄자가 되지 않으려는 합리적 선택처럼 보인다. 그러나 대부분의 의사결정권이 남성에게 있고 남성 중심적 업무 관행이 지배적인 상황에서 펜스룰을 내세우는 건 여성에 대한 의도적 차별이 될 수밖에 없다. 펜스룰이라는 용어는 최근에야 알려졌지만, 여성 ‘차단’이라는 발상은 새로울 것도 없다. 채용, 승진, 업무배치 등에 대한 여성의 접근은 항상 유리벽과 유리천장으로 막혀 있었기 때문이다. 최근에 덧붙여진 것은 일상적 업무처리, 점심식사, 회식, 워크숍 등 원활한 업무 수행에 필요한 일상적 접촉조차 차단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미투를 빌미로 명백한 성차별을 정당화하려는 것이자 30년 전, 즉 고용상 성차별을 금지하는 남녀고용평등법이 제정된 1987년 이전으로의 퇴행이다.
미투는 더욱 완전한 민주주의를 바라는 정당한 요구다. 여성들이 원하는 것은 일상과 공적 영역에서 동등한 인격체이자 시민으로 존중받고 인정받을 권리다. 아주 오랫동안 조직과 공동체가 성범죄 피해자에게 그러했듯 우리 사회가 지금 이 순간 봇물 터지듯 쏟아지는 경험과 목소리를 의심하고 조롱하고 비하하고 외면한다면 그동안 우리가 성취해 낸 민주주의는 미완성으로 그치게 될지 모른다.
최근 미투는 다양한 여성들의 피해 경험에 대한 끊임없는 말하기로 이어지고 있다. 공개적인 폭로일 수도 있고, 익숙한 일상에 대한 교란일 수도 있는 여성들의 말하기에 대한 대응으로서 펜스룰은 이처럼 빠르게 진화하는 여성들의 민주주의를 따라잡기에 역부족이다.
미투에 대한 근본적인 대응은 펜스룰 차별이 아닌 동등한 인격체로서 여성을 존중하고 공존할 수 있는 감각의 학습이다.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여성을 비하하거나 성적 대상으로 보는 관행에 대한 비판적 성찰이 출발점이 될 것이다. 여성들의 목소리가 낯설고 불편하게 느껴진다면 체계적인 성 불평등 구조 속에서 여성을 배제하고 차별하는 특권화된 목소리에 길들여진 탓은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 이를 통해 공존의 감각을 학습한 이들의 위드유(WithYou) 참여와 연대가 확산된다면 아마도 미투 운동의 끝은 완전한 민주주의와 닮아 있을 것이다.
마경희 한국여성정책硏 정책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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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마경희] 펜스룰 대응은 퇴행적 발상
입력 2018-05-08 05: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