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미국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요청에 따라 1박3일 일정으로 미국을 전격 방문했다. 북·미 간 사전 조율 과정에서 합의된 의제들의 이행 방안과 로드맵을 협의하기 위한 것으로 전해졌다. 문재인 대통령도 북·미 정상회담 일정이 확정되는 대로 미국 방문을 추진하고 있어 정부의 북·미 중재외교가 최고조에 달했다는 평가다.
정 실장은 4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에 도착해 존 볼턴 NSC 보좌관과 면담하고 5일 귀국할 예정이다. 정 실장의 방미는 볼턴 보좌관의 요청에 따른 것이다. 미국이 비공개를 요청함에 따라 정 실장은 앞선 3일 오후 연가를 내고 미국으로 출국했다. 청와대 참모 중에서도 임종석 비서실장과 국가안보실 일부만 알 정도로 보안을 유지했다.
정 실장의 방미는 지난달 24일 이후 9일 만이며, 볼턴 보좌관 취임 이후엔 세 번째다. 특히 이번에는 1박3일의 짧은 일정으로 미국을 찾은 만큼 북·미 간 사전 조율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든 것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된다.
정 실장은 볼턴 보좌관 등 백악관 참모들과 북·미 정상회담 의제들을 광범위하게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백악관은 “두 사람은 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간 4·27 남북 정상회담에 대한 논의와 함께 다가오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 간 북·미 정상회담에 대해서도 논의했다”고 밝혔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트럼프 행정부는 북한과 협상한 경험이 없다”며 “대북 협상 노하우를 우리가 훨씬 많이 가지고 있는 만큼 미국이 북한과의 논의 내용에 대한 조언을 구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어 “미국도 북한과의 합의 내용을 두고 앞으로 어떤 단계를 거쳐 나아갈지 고민이 적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남북 정상회담 이후 문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과 75분간 통화하긴 했지만 한·미 양국 고위직의 대면 접촉은 없었다. 정 실장과 볼턴 보좌관은 남·북·미 3자 사이 조율 내용을 논의하고 세부적인 대응 방안을 조율했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미국의 대북 체제 보장 과정과 북한의 비핵화 과정을 단계적으로 주고받는 로드맵을 논의했을 가능성이 크다. 북한은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 대외 공개, 미국인 억류자 석방 시사 등 선제적인 조치들을 취하고 있다. 미국 입장에서는 정 실장을 통해 정부가 판단하는 북한의 진의와 대응 프로세스를 듣고 싶어 했을 가능성이 높다. 또 미국이 ‘CVID’(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핵 폐기)를 넘어 ‘PVID’(영구적이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핵 폐기)를 내세운 상황에서 정 실장도 미국의 구상을 청취할 필요가 있다.
북·미 정상회담 개최지가 판문점으로 확정됐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불과 1주일 전 판문점에서 남북 정상회담을 개최했던 만큼 판문점의 시스템을 묻기 위한 방문 요청일 수 있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트위터에서 북·미 정상회담 개최지로 판문점을 공개 거론한 데 이어 이달 1일 “곧 개최 시기와 장소를 발표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청와대 관계자는 “북·미 정상회담 개최지는 미국이 결정할 일”이라며 “장소를 가지고 논의하는 것은 스몰딜(작은 거래)에 가깝다. 미국이 정 실장의 방문을 요청한 것은 비핵화를 위한 빅딜용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강준구 기자 eyes@kmib.co.kr
정의용 9일 만에 또 美로… 북·미 ‘빅딜 악수’ 위한 막바지 중재
입력 2018-05-04 18:06 수정 2018-05-04 21: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