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이례적 中 왕이 ‘나홀로 면담’

입력 2018-05-04 18:00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왼쪽)이 3일 평양에서 왕이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과 악수하고 있다. 신화뉴시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3일 배석자 없이 홀로 왕이(王毅)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을 만났다. 김 위원장은 종전 선언에 중국이 참여하는 문제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4일자 1면에 김 위원장과 왕 부장이 회담하는 사진을 크게 실었다. 중국에선 왕 부장과 쿵쉬안유(孔鉉佑) 외교부 부부장, 리진쥔(李進軍) 주북 중국대사가 참석했지만 김 위원장은 통역만 대동했다. 김 위원장이 담당 간부 없이 외국 대표단을 혼자서 만난 일은 거의 없었다.

김 위원장의 ‘나홀로 면담’은 왕 부장과 보다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누기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김 위원장은 판문점 선언에 종전 선언과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논의 주체로 ‘남·북·미 3자 또는 남·북·미·중 4자’가 명시된 배경을 설명하고, 왕 부장은 중국이 반드시 참여해야 한다는 입장을 전달했을 것으로 보인다. 이용호 북한 외무상과 왕 부장이 2일 만나 각자 입장을 충분히 공유한 만큼 김 위원장과 왕 부장의 회담은 북한 최고지도자가 직접 나서 중국 인사를 맞았다는 정치적 의미가 크다.

왕 부장은 이번 방북을 통해 한반도 문제에서 중국이 소외되지 않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드러냈다. 정재흥 세종연구소 연구위원은 “종전 선언과 평화협정 체결은 한반도 지형에 엄청난 변화를 불러오는 사안”이라며 “그런 논의에 중국이 빠지고 남·북·미가 타협점을 찾는다면 중국의 이해관계와 고려사항이 배제될 수 있기 때문에 중국 정부로선 민감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북한은 중국의 참여 여부는 거론하지 않고 원칙적인 입장만 밝히고 있다. 노동신문은 두 사람의 회담 사실을 전하면서 “김 위원장은 왕 부장과 중요한 문제들에 대한 조·중(북·중)의 견해를 재확인한 데 대해 커다란 만족을 표시했다”고 보도했다. ‘견해 일치’ 등의 표현이 없는 것으로 봐선 북·중이 종전 선언 주체를 두고 각자 입장을 확인했을 뿐 합의에는 이르지 못한 것으로 해석된다. 북한의 미적지근한 반응은 중국 외교부가 김 위원장과 왕 부장의 대화 내용을 웨이보(중국판 트위터)를 통해 실시간 상세히 소개한 것과는 온도차가 있다. 북한은 북·미 정상회담에서 종전 선언에 관한 구체적 구상이 나오기 전까지 외교적 모호성을 유지할 가능성이 높다. 한반도 문제에서 영향력을 유지하려는 중국과 현 상황을 주도하고 있는 북한 간 미묘한 긴장관계가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조명균 통일부 장관은 이날 국회에서 민주평화당 지도부를 만나 “종전 선언에서 중국을 배제하는 것은 전혀 아니다”라며 “지금도 이 문제는 중국의 의사에 달려 있다”고 거듭 확인했다.

권지혜 기자 jh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