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검사의 용기 있는 행동으로 촉발된 ‘미투’ 운동은 이제 누구도 거스를 수 없는 하나의 사회적 현상으로 자리 잡았다. 그동안 성추행·성폭력 피해자들의 이야기는 만년설 속에 덮여 깊이 숨겨져 왔다. 그런데 곳곳에 숨어 있던 아픔들이 거대한 눈사태로 변해 우리 사회를 덮쳤고, 우리 모두를 부끄럽게 만들었다.
치료받고 보호받아야 마땅할 상처를 숨기고 살았던 이들이 계속해서 ‘나도 당했다’라고 외칠 수 있는 배경에는 ‘우리가 함께할 것(With You)’이라는 응원과 도움이 보태졌기 때문이다. 위드유 운동은 피해자들에게 더할 나위 없이 힘을 주고, 특히 2차 가해를 예방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해주고 있다. 위드유가 있기에 미투 운동이 거대한 흐름으로 자리 잡게 된 것이다.
‘제노비스 신드롬(Genovese Syndrome)’이라는 말이 있다. 방관자 효과라고도 불리는 일종의 사회병리현상을 일컫는다. 미국에서 제노비스라는 여성이 강도에게 무참히 살해되는 사건이 있었다. 그 현장을 수많은 사람이 목격했지만 제노비스가 처참한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결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적지 않은 목격자들이 있었으나 그 누구도 직접 도와주거나 경찰에 신고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사회심리학자들은 주변에 사람이 많을수록 책임감이 분산돼 다른 사람들이 나서지 않는 것을 보고 도움이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잘못된 판단’과 ‘꼭 내가 아니더라도 다른 누군가가 도움을 주겠지’라고 생각하는 ‘심리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고 분석한다.
위드유 운동도 마찬가지라고 본다. ‘내가 아니더라도 누군가는 도와주겠지’ 하고 넘겨버린다면 지금의 위드유 운동은 틀림없이 찻잔 속 태풍에 그치고 말 것이다. 미투 운동도 사회적으로 크게 확산되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 경찰은 효과적 대응을 위해 여성 단체, 여성 긴급전화 1366, 아동·여성 지역연대 등 유관기관 사이에 연결고리 역할을 자처하며 ‘2차 피해 방지를 위한 With You 간담회’를 통해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 왔다. 특히 3∼4월 2개월간을 ‘성폭력 예방활동 강화 기간’으로 정해 성폭력 대처요령·신고방법 등을 전방위로 홍보하는 한편 경찰관들의 성인지 감수성 향상 교육, 성폭력 피해자 전담조사관제, 지역사회 인프라 구축 등 성폭력 근절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들이 성폭력 근절에 보이지 않는 밑거름이 되고,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성차별적 인식과 사회적 분위기를 바꾸는 데 분명 일정한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경찰만의 노력으로는 충분하지 않을 뿐더러 바람직하지도 않다. 사회적으로 확산되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가 나서야 한다. 고대 그리스 아테네의 정치가이자 시인인 솔론은 ‘피해를 입지 않은 자가 피해를 입은 자와 똑같이 분노할 때 정의가 실현된다’고 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 피해자의 고통에 공감하고 함께 용기를 내야 할 가장 좋은 때는 바로 지금 이 순간이 아닐까. 우리 사회 구성원들이 깊이 인식하고 있어야 한다.
용기를 내 본인의 고통을 알린 이들에게 모두의 따뜻한 관심과 동참이 절실한 때다. 그래야 성폭력 피해자를 위한 진정한 ‘With You’가 우리 사회에 바람직하게 정착될 것이다.
이용표 경남지방경찰청장
[기고-이용표] 위드유, 당신이 외칠 때다
입력 2018-05-05 05: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