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 히스토리] IRA 이어 ETA도 해산… 막 내린 ‘서유럽 분리독립 테러’

입력 2018-05-04 05:02
바스크 지역의 분리독립을 주장해 온 무장단체 바스크조국과자유(ETA)가 2001년 11월 스페인 수도 마드리드에서 벌인 폭탄테러 현장에서 소방관들이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AP뉴시스
ETA가 2011년 10월에 공개한 선전 영상으로 복면을 쓴 조직원들이 주먹을 치켜들고 있다. AP뉴시스
스페인 프랑코 압제에 항거 바스크 독립 투쟁 벌여온 ETA
잔혹한 테러에 대중들 외면… 60년 만에 공식 해산 선언
스페인 정부 “해산과 무관하게 과거 범행 수사… 책임 묻겠다”


스페인으로부터 분리독립 투쟁을 벌여온 무장단체 바스크조국과자유(ETA)가 2일(현지시간) 공식 해산을 선언했다. 2001년 무장해제를 선언한 북아일랜드의 아일랜드공화국군(IRA)에 이어 ETA까지 해산함에 따라 서유럽 지역의 분리독립을 위한 무력투쟁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ETA는 스페인이 독재자 프란시스코 프랑코의 지배를 받던 1959년 바스크 지역의 분리독립을 목적으로 생겨난 조직이다. 피레네 산맥을 사이에 두고 스페인 북부와 프랑스 남부에 걸쳐 있는 바스크 지역에선 주민 다수가 스페인어와 다른 고유 언어인 바스크어를 쓴다.

독자적인 언어와 문화를 기반으로 10세기에 바스크 왕국이 출범했지만 1497년 에스파냐 왕국에 통합됐다.

19세기 후반 산업혁명 당시 바스크 지역은 스페인 최대의 공업지역으로 중앙정부에 많은 재정적 기여를 했다. 그러나 정부의 사회기반시설 지원이 부실하고 정부가 바스크 지역의 자치를 인정하지 않자 불만이 쌓여갔다.

특히 스페인 내전 중이던 1937년 4월 프랑코를 지원한 독일군이 전투기의 살상력을 시험한다는 목적으로 바스크의 게르니카를 폭격한 일은 현지인들의 분노를 폭발하게 했다. 후에 화가 파블로 피카소가 그림으로 남긴 이 참사는 24대의 전투기가 24t의 폭탄을 퍼부어 1600여명이 사망한 사건으로 기록돼 있다.

이런 배경을 가지고 생겨난 ETA는 처음엔 독재자 프랑코에 맞서는 좌파운동의 한 가닥이었다. 그러나 프랑코가 바스크 문화 억압정책을 펴면서 ETA는 폭력성을 드러냈다. 68년 두 명의 ETA 조직원이 자신들을 검문하던 프랑스 경찰을 사살한 것이 시작이었다. 73년엔 프랑코의 권력을 이어받은 루이스 카레로 블랑코 총리를 겨냥해 차량 폭탄테러를 일으켰고, 87년엔 바르셀로나 시장 테러로 20여명이 희생됐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68년부터 2010년 사이에 ETA가 자행한 폭탄테러나 총격으로 829명이 사망했으며 그중 절반은 무고한 시민들이었다고 전했다. ETA가 폭력적으로 변해가면서 대중은 ETA를 외면했다.

조직 지도부가 계속 체포되고, 공격을 시도할 여력도 없어진 ETA는 결국 폭력 투쟁을 멈췄다. 지난해 4월 스스로 무장해제를 선언했고, 무기고를 공개했다.

이날 현지 언론 엘디아리오에 공개된 선언문에서 ETA는 “우리의 역사적 활동기와 그 역할에 종식을 선언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다만 “바스크 지방, 스페인 그리고 프랑스 사이의 분쟁은 원래 ETA와 함께 시작된 것이 아니었고 ETA 해산으로 끝나지도 않는다”고 강조했다.

스페인 정부는 ETA 해체와 상관없이 과거 ETA가 저지른 범행을 철저히 수사해 관련자들에게 책임을 묻겠다는 방침이다.

스코틀랜드 세인트앤드루스대 디에고 무로 교수는 “ETA의 해산은 서방 민족주의자들의 무장 테러리즘에 종말을 가져올 것”이라고 뉴욕타임스에 말했다.










임세정 기자 fish813@kmib.co.kr